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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치유를 위한 예수님의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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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4-18 11:11 조회1,6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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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당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가운데 하나는 용서입니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용서하라는 설교와 권고를 듣는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에서 용서가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입고 고통을 겪은 사람이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당한 고통만큼, 아니 그 몇 곱절을 상대방도 아픔을 겪기 바라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마음이 깊어질수록 가해자보다는 피해를 당한 사람의 삶이 피폐해지고 마음에 병이 들게 됩니다. 어쩌면 이런 현실에서 용서는 죄지은 사람을 구원하는 일뿐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용서는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서 오가는 용서에 대한 대화는 어떤 마음으로 용서하고 어떤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 여기서 베드로는 자신에게 피해를 준 가해자를 자신의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보통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주님, 저를 속이고 아프게 만든 벌레 같은 인간이 자꾸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에게 죄지은 이를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죄 지은 형제를 두고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고 이르셨습니다. ‘조건 없는 용서가 죄로 어긋난 형제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이 아니라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용서, 진정한 화해와 새로운 일치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나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형제자매로 다시 받아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용서는 진짜 용서가 아닙니다. 상대방을 내 발 앞에 무릎 꿇리고 머리를 조아리게 하고 나서야 용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용서라는 탈을 쓴 보복일 뿐입니다. 상대방에게 내가 겪은 것과 동일한 고통과 아픔을 겪게 하고 내가 흘린 만큼의 눈물을 흘리게 해야만 용서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용서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실천하는 보복 없는 화해입니다. 그런 용서를 통해서만 보복과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고 진정한 평화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용서하면, 우리는 다시 주님 안에서 다시 형제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용서는 상처를 준 사람과 상처를 받은 사람 모두가 사랑으로 치유받게 하기 위해, 우리 영혼의 의사이신 예수님이 써주신 가장 좋은 처방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