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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성경-침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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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인 세실리아 작성일20-05-29 13:44 조회1,0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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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 숲정이(2487)에서 침실은 사랑하는 이가 서로에게 충실한 장소이자 생명과 보살핌의 자리가 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번 지면에서는 이러한 요인들을 엿볼 수 있는 성경 본문들을 살펴보자.

그리스도인에게 충실함의 표징은 바로 하느님의 이름이다. 하느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라는 표현은 나는 너와 항상 함께 있는 이다.”로 번역될 수 있다. 바꿔 말해 이 표현의 초점은 하느님께서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데에 있다. 이렇게 하느님은 마치 부부의 계약을 맺은 이들이 집 안에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서로 떨어져 있을 때도 계속해서 부부의 상태로 있게 되듯이 인류와 언제나 변함없이 함께하신다. 이와 같은 성경 저자들의 하느님 체험은 부부 사랑의 징표 안에서, 혼인 예식의 징표 안에서, 여자와 남자 사이의 일치 안에서 나타나는 친밀함부드러움으로 묘사된다(이사 1,21; 에제 16; 호세 1,3 참조). 인간의 동반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자신이 인류와 맺은 계약에 영원히 진실하시고 충실하신 분이시며 인간을 향해 항상 말을 거시면서 그분의 부드러움과 자비를 인간에게 베풀고자 하신다. 침실의 내밀한 사랑을 체험한 한 성경 저자는 하느님을 이렇게 표현하기에 이른다. “그분의 믿음은 하늘처럼 굳건하다.”(시편 89,1-3 참조 )

그러나 늘 한결같으신 하느님에 비해 인간은 완전하지 못한 존재다. 오늘 사랑했지만, 내일은 사랑하지 않을 가능성을 지녔다. 이런 경향은 종종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도록 만든다.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 피곤한 상황에 있고 싶어 하지 않아 하고, 우리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들과 비참하게 만드는 것들을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인간 자신이 그 무엇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 사랑을 계산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이미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잃은 것이고, 누군가 사랑 안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면 사랑은 그 사람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머지않아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하느님 사랑이나 은총(chèsed, 헤세드)이라는 말은 시편에서 127번이나 나온다. 이 단어의 뜻을 언제나 문맥에 맞게 구분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이 단어가 은총’, ‘좋으심’, ‘충실함’, ‘자비’, ‘사랑과 같이 여러 가지 의미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는 당신 백성과 맺으신 계약과 관련하여 상호 간의 충실함’, 두 사람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믿음이라는 해석이 적절하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충실함을 드러내시는 태도는 사랑의 진실함, 신뢰, 미덕, 은총, 자애, 견고함이다. 하느님 자신은 이스라엘과 계약으로 연결되어 계시면서, 그분의 선함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 백성이 하느님께 죄를 지어 그분을 거부하였을 때, 하느님의 사랑은 법률적 판결을 멈추시면서 당신 사랑의 더 깊은 모습을 드러내셨다. 또 처음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는 사랑, 배신에 더 강하고 죄에 더 강한 은총을 보여주셨다. 결과적으로 한계를 지닌 인간의 계약은 하느님의 영원하고도 변함없는 사랑 덕분으로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과 항상 함께 있는 이이자 변함없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이와 함께 역사를 써나간다. 이 역사 안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실망과 좌절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통스럽지만 회개와 용서의 눈물이 담겨 있을 수도, 비참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사랑과 감사의 눈물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부부의 침실은 각자의 침실을 쓰다 한 침실을 쓰게 된 두 사람의 역사를 목격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나눈 사라지지 않을 내밀한 세월의 산증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