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성경 - 화장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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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인 세실리아 작성일20-08-27 14:53 조회91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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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지 않은 알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분명하게 느끼는 것이지만 본시 침대와 몸은 하나였다. 나누어지질 않는다. 너는 원래 체력이 약해, 그러니 더 자야 해. 보이지 않아 잡히지도 않는 게으름을 잡아채 꾸역꾸역 집어넣고 나서야 겨우 몸이 말을 듣는다. 오늘은 집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샤워기의 물을 트니 비릿한 수돗물 냄새와 시원한 물소리가 난다. 체취와 피지를 없애 준다는 비누로 거품을 낸다. 이때 드는 엉뚱한 생각. 귀찮은데… 안 씻어서 몸에 냄새가 나고 옷도 후줄근하게 입은 채로 그냥 사람들을 만나면 안 되나? 그럼 그 사람은 말은 안 해도 원숭이 보듯 보겠지? 그럼 만나는 사람한테도 씻고 오지 말라고 하면 되잖아. 그럼 원숭이 둘이 만나는 건가? 그래, 말하는 원숭이는 되지 말자. ‘XXX 성당 축성식 기념’이라고 쓰인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나’처럼 생긴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어제도 키가 작았고 오늘도 키가 작다. 한계다. 내일도 어찌할 수 없는 이 한계를 가지고 있겠지. 새롭지도 않은, 평소에 자주 입던 옷을 새롭게 입고 집을 나선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나 혼자 자기 몸을 위해 해야만 하는 ‘의식儀式’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는 어느새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 있다.
‘생활 속의 성경’에서 다섯 번째로 생각해 볼 집 안의 장소는 화장실 혹은 욕실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사실 이 장소는 사람들에게 많이 생각되어지지 않는 장소이면서도 실제로는 집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장소이다.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주’로 보내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위해 꼭 거쳐야만 하는 지점인 탓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제 막 호감을 느끼게 된 사람을 만난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이 만남을 위해 화장실에서 물로 깨끗하게 자신의 몸을 씻어내고, 좋은 향이 나는 비누와 샴푸로 단장하며, 좀 더 우아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화장품이나 향수 그리고 호감이 가는 몇몇 옷가지를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깨끗하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나 자신을 바라보며 오늘 나와 만나는 그이도 자신을 그렇게 봐주리라는 기대와 함께 외출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화장실은 그에게 분명한 ‘전’과 ‘후’를 만들어준다. 자신의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단장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장소는 앞서 말한 이미지만을 지니고 있지 않다. 사춘기 시절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해보자. 그때만큼 자신의 얼굴과 몸을, 마치 거울 속에 빠져들 듯, 가깝게 ‘들이대는’ 적이 없을 것이다. 내 눈은 왜 이렇게 작은지, 내 얼굴에만 왜 이렇게 여드름이 많은지, 내 다리는 왜 이렇게 짧은지, 내 몸매는 왜 모델과 같지 않은지와 같은, 셀 수도 없고 끊이지도 않는 불만족 속에서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감을 잃기도, 놀림을 받기도, 그래서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제발 내 몸에서 보기 싫은 그 부분이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런 것들이 물로 씻어 씻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 때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래서 나의 몸을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을까 고민하여 연출된 ‘타자화他者化된 몸’의 상태, 다시 말해 자신의 몸이 더 이상 본연의 자신과 일치를 이루고 있지 못하여 도구로 전락해버린 그 몸의 상태를 탈피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자본주의의 아름다움이 아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나름의 아름다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나의 몸과 화해를 한다. 그렇게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괴로워했던 그 한계는 오히려 하느님의 창조물로써 드러나는 아름다움이 된다. 이 변화의 과정이 내가 나를 바라보는 또 나만 알 수 있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 일어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