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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신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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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4-17 17:59 조회1,4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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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살은 하느님을 향해 신음하고 있다. ‘본래그랬다. 이 신음을 욕망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의 단일체다. 살의 욕망은 근원적으로 마음·정신의 욕망과 자리를 함께 한다. ‘인간의혹은 인간적욕망은 원래그러하다. 먹고 자고 배설하고 성행위를 하며 자녀를 낳아 가정을 이루고 나아가 사회라는 공동체를 형성할 뿐 아니라, 진리에 관한 앎까지 추구하는 욕망들은 모두 다 인간의혹은 인간적욕망들이다.

이같은 욕망들의 기저를 이루는 하나의 욕망이 있다. 철학자들은 이를 자기실현’, ‘행복혹은 좋은 삶이라고 명명해 왔다. 다채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묘사되어 왔던 행복에 관한 진실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그것이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이루고 계시는 친교, 곧 하느님 나라에의 참여라는 사실로 밝혀진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욕망들을 부인하거나 고발하지 않는다. 인간의 다양한 욕망들을 인간의 심연에 자리한 근원적 욕망에 통합시켜서 충만히 실현하는 길을 제시한다.

욕망은 앎을 전제로 한다. 본래 욕망한다면 모종의 앎이 본래 주어져 있음을 뜻한다. 행복에 관한 무언가를 본래 알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본래 욕망한다. 그런데 우리의 체험은 욕망에 관한 더욱 심오한 지식을 제공해 준다. 끌림이 욕망을 일깨운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욕망하는 것은 내가 이미 그것에 이끌려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본래 이끌리는, 다시 말해 인간을 본래적으로 이끄는 바를 ’(, 좋음)이라고 부른다. 자기보존, 성적 결합, 공동체 형성, 진리 추구를 향한 본래적욕망들은 그 욕망의 대상들이 모두 객관적으로 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인간은 그것들이 이라고 본연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욕망한다. 선을 향한 인간의 끌림과 인간을 이끄는 선 사이에서 인생의 드라마가 창조된다. 그리스도는 이 이끎과 끌림을 틀림없이 이어주는 길이시다.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마태 19, 17)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에 인간의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선이 무엇’(사물)이 아니라 어떤 분’(페르소나)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행복을 향한 자연적인 이끌림은 만인을 부르시는 하느님의 초대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이라는 최고선을 향한 인간의 끌림과 인간을 이끄시는 하느님이라는 최고선이 이루고 있는 긴장 안에서 인간의 자유는 비로소 창조적으로 실현된다.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당신을 욕망하기 전에 인간을 먼저 이끄셨다. 그래서 인간이 본래적으로 당신을 알아보고 사랑할 수 있도록 섭리하셨다. 창조주의 이같은 지혜는 그리스도에 의해 결정적으로 드러나고 완성된다. 참행복 선언(마태 5, 3-12)과 십자가의 복음(1코린 1, 18-31)이 이에 속한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라고 묻는 바리사이들에게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고 말씀하신다. 모세의 말을 빌어 이혼할 수 있는 근거들을 따져 묻는 우리의 시선을 한처음으로 돌리신다(마태 19, 3-9). 혼인이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신비안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보도록 이끌기 위함이다. 인간을 행복으로 이끄시는 창조주 하느님의 계획 안에 이혼은 없다. 행복을 향한 인간의 본연적 끌림, 근원적 욕망에 비추어 볼 때 이혼은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