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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연지동-김순화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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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4-30 11:02 조회1,6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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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새로운 복음화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로마 12,2)

 

7년 열애 끝에 결혼하여 서울에서 살다가, 부모님계신 정읍으로 내려왔습니다. 남편은 직장을 구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고, 하루 이틀, 한해 두해 지내다 보니 결국 실업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한 집에서 같이 지내다 보니 사소한 것이 불씨가 되어 서로 상대방 탓이고 잘못이라며, 7년의 아름다운 추억은 남의 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원수처럼 매일 싸우다 보니 낮에 술까지 먹기 시작했습니다. 큰방엔 혼자되신 아버님께서 당신 신세 한탄과 9남매중 제일 맏었던 아들의 기막힌 모습 보며 한탄하고 계시고, 작은방에는 남편이 횡설수설 자기신세 한탄, 양쪽 방에선 하루 종일 두 부자가 술에 취해 누워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규칙적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부럽고 좋아보였는지 모릅니다.

나라도 정신 차려야지.” 하던 중에 넷째 시누이의 권유로 연지동 성당에 첫발을 내디디게 되었습니다. 예비자 교리와 강론 말씀을 들으면서 홀로되신 아버님과, 밉고 원망스럽던 남편이 한없이 불쌍해 보이기 시작하며 그때부터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님! 불쌍한 저 사람들, 닫힌 방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남편 일자리 하나만 마련해 주세요. 월급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저 방에서 끌어만 내 주세요.” 폐인이 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라자로야 나오너라.” 하시던 주님, 죽은 이도 살려주신 주님이 아니십니까? 주님, 도와주세요.

고통은 하루하루 더 심해졌습니다. 대낮부터 술에 만취되어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을 붙들고 애들과 함께 울면서 통곡하며 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화가 나신 아버지께서는 이집 불 질러 버리고 오늘 모두 끝장내자.”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아니 시간을 내서 애들과 성당을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시며 어서들 오너라. 너무 힘들지?” 하시며 따뜻하고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누구 눈치도 방해도 간섭도 받지 않는 새벽 34시경 성체 조배실은 나마의 유일한 안식처요, 나만의 천국이었습니다.

간절히 기도드리고, 멍하니 주님만 바라보고, 때론 펑펑 울기도 하고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그날그날 주시는 만나를 받아먹으며 하루하루를 견디어 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남편은 직원 100명이 넘는 회사 대표이사로 이력서 1장 제출하지 않고 주님께서 불러주셨습니다. 결혼 후 10년 만에 남편이름 석자 적힌 월급봉투를 손에 들었을 때 끼니 때가 되어도 배고프지 않았고, 밤이 되어도 너무 좋아 잠도 오지 않았고,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감사기도가 저절로 나오고, 주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 옆에 함께 계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월급봉투가 40여장 모였을 때 또 사표를 냈습니다. 아이들이 한창 사춘기인 중·고등학교 때 아버지 직업란에 쓸 아버지 직업이 없다며 우는 딸아이를 보며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두 아이의 불평불만이 쏟아졌습니다. “이젠 기도하기 싫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할아버지랑, 아버지는 매일 술만 먹고 싸우기만 하고, ‘엄마는 7년이나 연애했으면서 저런 사람인 줄 몰랐느냐? 이혼해라.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 죽어버렸으면두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습니다.

지금이 그래도 행복하다. 두 분 돌아가시고 나면 지금 이 시간마저 얼마나 그립겠느냐!“ 달래도 보았지만 사춘기 애들에게 먹힐 리가 없었습니다.

딸아이는 우리 집엔 자가용 하나도 없고 우리를 이렇게 불편하게 하려면 왜 낳았어. 낳지 말지.” 왜 낳아서 우리를 고생시키느냐고 투덜대며 기숙사 옷가방 책가방 무겁게 들고 나가면서 나 다시는 이 집에 안 들어 올거야.” 두 아이 기숙사 보내고 한없이 울면서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주신 선물 저 혼자서 달래기에는 너무 힘들어요. 도와주세요. 빗나가지 않고 주님 따를 수 있게 지켜주시고 보살펴 주세요.” 다시는 집에 안들어 오겠다며 큰소리 치고 나간 딸아이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엄마, 미안해요. 엄마도 힘든데 나까지 보태서. 미친년한테 당했다고 생각하세요. 저 사실은 열심히 기도하고 있어요. 오늘도 집에서 나와 조배실 들러서 기도하고 지금 기숙사에 도착했어요. 주님께서 할아버지랑 우리식구들 도와주신다고 했어요. 엄마 힘내세요. 엄마, 사랑해요.” 저한테 실컷 퍼붓고 지은 죄가 있으니 위로한답시고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병명은 간경화였습니다. 병명이 나오자 술을 끊었고, 투병생활 중에 신자도 아니면서 성경책 2,100페이지를 노트 16권에 성경필사를 하면서 하느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5년 동안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남편은 하느님의 자녀 요셉이라는 이름으로 세로 태어날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작은 살림살이지만 매월 첫날 교무금 봉헌하며 주님 몫 먼저 내어드리고, 한달을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해결해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두 아이를 고3때까지 신앙생활 꾸준히 하고 둘 다 원하는 대학 장학생으로 학비걱정 없이 졸업하고, 직장 다니며 매월 꼬박꼬박 자기들을 길러준 보험금이라며 용돈을 계죄이체로 정기적으로 자동입금하고 있습니다.

딸아이가 가끔 예외로 생일, 어버이날, 기념일 등을 챙겨주며 동생은 엄마 용돈 주었냐며 얼마 주었냐고 체크합니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고통의 시간들 속에 주님께서는 늘 함께 계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두 아이들에게 너무나 보여주지 말아야 할 모습들(더 못한 얘기들도 있지만) 감당하기 힘든 시간들 속에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겠습니까?

아침에 눈뜨면 기도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 뜻 안에서 살아가겠습니다.

당신 말씀이 저를 살리신다는 것

이것이 고통가운데 제 위로입니다.”(시편 11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