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안개 걷히고 — 어느 신자의 신앙고백[수송동-정백용 도마]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4-30 11:04 조회1,694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의심의 안개 걷히고 — 어느 신자의 신앙고백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그리고 얼떨떨했다. 분명 거절하다가 떠밀리다시피 받는 세례였고 게다가 빈정거리기까지 했던 세례였다. 그런데 그 세례를 받고 난 순간 웬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다니. 이 무슨 조화(造化)인가? 신앙이란 무엇인가, 하느님의 섭리란 무엇인가. 지금 생각해도 2013년 10월 13일 영세 받던 순간이 생각하면 할수록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이하고 감동적이다.
교리 선생님인 교우의 끈질긴 권유 때문에 억지춘향이로 예비신자 교리반에 들어오고 나서 영세받기 한 달 전쯤 “여러분은 10월 13일에 세례를 받게 됩니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때까지 생소한 용어만 많지 별 믿음이 가는 것도 없고 해서 무심코 “그래요? 벌써 세례 받나?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하며 “우리는 보류해야겠어요.”했다. 사실상 세례 거부였다. 그랬더니 교리 선생님은 당혹감과 실망한 기색을 드러내며 “(성당에) 안 다녀도 좋으니까요 그냥 남들 받을 때 세례만 받으시죠.”하고 간청했다. 그래서 선생님 성의와 체면도 있고 그의 부부와의 오랜 친분관계도 있고 해서 마지못해 세례를 받게 되었다(“세례만 받고 바로 냉담에 들어가면 되지.”하는 생각이었음). 선뜻 내키지 않은 마음인지라 세례 받는 당일 앞 사람들이 신부님한테서 물로 이마를 씻는 예식을 받는 것을 보면서도 속으로는 “저런다고 죄가 사해지고 새로 태어날까, 그냥 형식이지 뭐...”하고 비아냥거리며 신부님 앞에 섰다. 신부님이 내 이마에 물을 부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 하는 의식을 받고 돌아서 자리로 돌아오려고 좌석 벤치 모퉁이를 막 도는데 성당 천장 쪽에서 (사실은 성가대에서 부르는 성가 소리인데)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가톨릭성가 479장)하는 합창 소리가 이상하리만치 환희에 찬 음성으로 또렷하고 우렁차게 들려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이었다. 딱 한번 너무나 한 많은 일생을 살다 가신 어머니 장례식 때 갑자기 왈칵 쏟아졌던 그런 ‘뜨거운 눈물’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나는 놀라고 당황하여 누가 볼세라 두 손으로 얼굴을 꽉 가리고 허리를 굽혀 겨우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한참 고갤 숙이고 앉아 눈물을 추스르고 나서 언뜻 스친 생각은 “아,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진짜 성령이 임하고 있었나.”였다. 곰곰 생각해 보니,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니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거듭 나지 아니하면/개신교]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3-7)는 말씀이 무섭다 싶었다. 과연 성경은 영이요 생명이구나 싶었다.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에페 2,8)이란 말이 떠오르면서 하느님께서는 기묘한 당신의 방법으로 강퍅한 마음을 감화시키고 회개시킨다는 것을 통감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고희를 목전에 두고 내 인생을 돌이켜 생각하면, 원래 어려서부터 장로교에 다녔던 나였는데, 하필 고시공부에 몰두해야 할 법과대학 3학년 시절에 종말론적 신앙에 빠져 신앙촌에 들어가는 바람에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는 한스러운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면서는 기독교엔 무관심을 넘어 냉소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때는 ‘예수’란 말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예수 믿으세요.’ 소리를 들으면 역겨운 생각이 들었고 ‘예수 믿는 사람’은 ‘뭔가 광적이거나 망상에 시달리는 사람’으로 보였다. 군산에 생긴 ‘예수병원’이라는 병원의 간판을 보고 ‘예수’라는 말이 싫어서 “재수 없어.”하고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다. 하여튼 적어도 내가 다시 기독교인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런 나를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교우 부부와의 수 십 년에 걸친 두터운 교분(交分)을 통해 — 그때는 개신교 하고도 신앙촌까지 들어가 살았던 나였기에 천주교 다니라는 말이 내 귀에 안길 리 만무했건만 그 부부는 20년 넘게 기회만 나면 “이제 성당에 나오실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제 성당에 나오시지 그래요.”하고 잊을 만하면 반복하여 끈질기게 권유했음 — 나 같은 사람도 다시 끌어들인 것을 보면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이사 40, 28) 역사(役事)하시는 그분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기독교에 나보다 더 냉소적이던 아내까지 끌어들였으니 어찌 놀랍고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2011년부터 교리 선생님 교우 부부는 한술 더 떠서 숫제 우리부부에게 예비신자 교리반에 나오라고 자꾸 권유하는 걸 단호히 거절했었는데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2013년 봄에 또 교리만 받아보라고 귀찮게(?)까지 하여, 어쩔 수 없이 교리반에 나가게 된 것이 결국 가톨릭 신자가 된 계기였다. 그 교우 부부에게 끈기를 주신, 하느님의 세심하신 섭리!
영세 받던 날의 뜻밖의 체험 후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분명 성령의 감화라는 믿음이 들었다. 또 그 후부터는 미사 중 영성체하면서 그 전처럼(예비신자 시절처럼) “상징적인 예식이지 뭐...” 하던 생각이 없어지고 축성된 제병(祭餠)과 포도주는 진짜 ‘예수님의 몸과 피’라는 믿음이 들었다. 나도 왕년에는 개신교도였기에 내 마음속에 자욱이 끼어있던 의심 즉 개신교들이 그렇게 비웃는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등 천주교의 성사와 교리에 대한 의심(천주교는 마리아교다?)의 안개가 영세 받던 날의 감화로 일거에 싹 가신 것.
그런데 영세 받던 날의 뜻밖의 체험 얘기를 듣고 기독교인인 지인들은 “야아, 정통으로 걸렸네.” “어마, 은혜 받으셨네요.”하고 부러워(?)하는 어투였는데 과연 그게 꼭 그럴까? 하긴 사실 그날 감화 체험이 없었으면 우리 부부는 영세 받자마자 냉담에 들어갔을 것이다. 우리 부부에게 ‘믿음을 주기 위한 성령의 은사(1코린 12, 9 / 이 어구는 아직도 세례 때의 감격에 대해 긴가민가해하고 있던 어느 날 새벽녘 꿈에 “고린도 전서 12장을 보라”는 선명한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 성경말씀을 찾아보고 깨닫게 된 것)임에 틀림없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선 나는 행운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그때 특별한 감화를 주신 것은 하느님이 보시기에 그만큼 내가 문제아였다는 반증 아닌가 싶다. 마지막 때에는 그리스도의 적(적그리스도) 또는 무법자가 나타나 속일 것이니 조심하라는 신신당부 말씀(마태 24,4-5; 마태 24,23-24; 마태 24, 26; 마가 13,21-22; 2테살 2,3-12, 1요한 2,18. 22 등)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지나고 보니 하필이면 사탄의 작용으로 온갖 힘을 가지고 거짓 표징과 이적을 일으키며(2테살 2,9) 하느님으로 자처하는 무법자(2테살 2,3-4)에게 미혹되었던 젊은 시절에 깊은 회한과 자괴감에 빠져 38년 동안 하느님을 외면하고 ‘예수’란 말에 염증을 느끼고 억지로 교리 받고 세례 받기를 거부하고 마지못해 세례 받고 세례 받는 순간에도 속으로 세례식을 빈정거리던 나 아니었던가?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하느님(로마 8,27)께서 보시기에 그런 내가 얼마나 괘씸하셨을까. 그냥은 안 될 것 같으니까 그날 따끔하게 호통을 치신 거 아닐까? 어쨌거나 감사할 일. 더구나 기독교의 본체이자 줄기요 다름을 존중하고 포용적이어서 좋은 가톨릭교의 신자로 신앙이 회복되게 되었느니 늦게나마 불행 중 다행 아닌가. 알렐루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 29)는 말씀에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신앙이란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께 응답하는 것이라는데, 영 ‘반응’할 것 같지 않던 두 사람. 죽으면 믿을 수 없으니까 살아서 믿어야 되는데(요한 11,26),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하마터면 영영 하느님을 외면하고 예수님을 경멸한 채 그대로 죽을 뻔했으니... 얼마나 아찔하고 감사한 일인지. 호산나!! “남은 지상 생활 동안, 더 이상 인간의 욕망을 따르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1베드 4,2)” 살다가 희망 속에 고이 잠들게 도와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