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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마지막 밤에[연지동-김순화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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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4-30 11:09 조회1,5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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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마지막 밤에

  

오늘은 16일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다.

미사 끝에 신부님께서 전 신자 성서쓰기 생활화하자는 말씀과 함께 올 연말 성탄절에 신·구약 성서를 모두 다 필사한 신자에게는 성탄 때 묵주 반지를 선물로 주신다고 하셨다. 영세한지 10년이 넘었지만 감히! 어떻게?’ 하면서 엄두도 내지 못한 터였는데 왠지 그래, 할 수 있어!’하는 확신이 섰다.

그 날부터 무조건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만만치 않았다. 내 생활의 가지치기를 하고 시작했어야 했는데 그대로 일상 그 생활을 유지하면서 쓰려 했던 게 문제였다.

우선, 꼭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상생활 순위를 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덮었다.

TV와 전화가 큰 걸림돌이었다. 내 손으로 TV 켜지 않기, 긴급한 상황 아니면 내가 먼저 전화하지 않기 등등 가지치기를 하니까 여유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래! 이제껏 교무금 11조 한 번 봉헌하지 못한 터라 하루 시간 십일조라도 바치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교무금도 매월 첫 날 그 달 생활비에서 가장 먼저 지출하듯이 하루 시간 십일조도 새벽으로 정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시부모님께서 일찍 주무시고 새벽 4시면 일어나셨기에 나도 같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게 버릇이 되어 있었다. 하루 2~3시간을 쓰다 보니 평균적인 장수가 나왔다. 그래서 신,구약 2,200면을 월별로 나누어 일별 페이지 수를 정하고 그것에 맞추어 쓰기 시작하였다. 저녁에 그 페이지 수와 날짜를 지우고 성서를 덮을 때의 뿌듯함이란 그 어떤 것과도, 그 어떤 표현도 감히 따를 수 없는 큰 기쁨이었다. 한 달을 별 일없이 계획했던 목표도 꼭꼭 지워가면서 열심히 쓸 수 있었다.

고통은 연락도 예고도 없이 온다더니 갑자기 눈 때문에 안과를 일주일 정도 다니게 되었다. 한쪽은 안대를 하고 다니니 걷는 것 조차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한쪽 눈은 분명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는데하면서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쓰는 게 아니었구나. 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쓸 수 있겠습니다.’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못 쓰게 되니까 쓰고 싶은 욕망은 더욱 절실해졌다. 건강한 눈이 되어 쓰다 보니 주님께서 허락해주신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지 새삼 느끼며 진정으로 순간 순간마다 감사하는 생활이 되었다. 고통 또한 큰 은총이었다는 것을 깊이 체험하게 되었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안토니오가 고 3이 되었다. 아들 안토니오에게 말했다.

네가 수능 준비를 하는 동안 엄마는 너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성서를 모두 쓰겠다.”

그랬기에 내 나름의 성서쓰기 마무리를 성탄 전이 아니고 117일 수능 전으로 앞당기기로 하다 보니 페이지 수가 조금씩 늘어났지만 눈 때문에 성서를 쓰지 못한 엊그제를 생각하면 대수가 아니었다. 눈만 건강하면 별별 어려움 이겨내리라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기에....

그렇게 며칠을 목표대로 꾸준히 써 내려갔다. 하루는 친정 남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친정 아버님께서 편찮으셔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셨는데 입원하셔야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워낙 친정아버님께서는 건강하셨기 때문이다.

고희를 넘기셨지만 술, 담배 전혀 안 하시고 친정이 시골집이라서 거의 손수 농사지으신 것으로 드시고 평소 아프신 데가 없으셨기에 별다른 걱정없이 이번 기회에 건강진단까지 받으시기로 하고 입원을 하셨다.

며칠 후 검사 결과가 매우 좋지 않게 나왔지만 오진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검사 결과가 잘못되었기를 기도하면서 아버님 병원 생활이 계속되엇다. 가끔은 무균실까지도 가셨다.

성서와 쓰기 노튼는 항상 지니고 다니면서 시간만 나면 입원실에서도 펼치고 섰다. 쓰면서 아버님에 대한 기도는 더욱 더 간절해졌다. 20여년을 시부모님과 같이 생활했기에 친정 부모님 한 번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진지 한 번 차려드리지 못해 죄스러웠는데..아쉬운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안토니오 수능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는 아버님 건강 회복이 더 간절해졌다.

성서를 다 쓰고 난 지금 오늘은 시월의 마지막 밤! 수능은 일주일 남고 성탄은 55일 남았다. 안토니오는 별 탈 없이 수능 준비를 마무리 하고 있고 모자를 쓰고 계시던 친정 아버님께서는 건강하신 모습으로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도 새롭게 많이 자라서 이젠 모자도 벗으시고 이발소에도 다니신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군데군데 나타났던 걸림돌들이 성서를 계속 쓸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다.

주님! 제 힘으로 된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게 당신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주님!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