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단상1>교리교육의 중요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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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인 세실리아 작성일20-02-19 15:05 조회1,90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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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 신부 1>
성경이란 주제로 살아온 지난해, 신자 분들께서는 거룩한 독서, 말씀의 벗 등의 다양한 성경 프로그램들을 만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단순히 그 내용을 눈으로 읽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안고 살아가며 다시 기도하는 것이라는 점을 배우셨을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단순히 책과 내 머릿속에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신앙으로 퍼져나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유기적인 네 과정의 시작을 우리는 신앙을 고백함으로 이뤄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으며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는 믿음이 우리를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이에 동의한다, 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교리서의 시작 부분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시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인간은 하느님을 본질적으로 갈망하며 하느님을 앎으로써 자신을 완성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교리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며, 교리를 배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 많은 신자들이 교리라는 말에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그러나 교리는 우리가 신앙을 원하는 한 우리에게 필요한 과정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시기에 우리 모두는 초대되고 있음을 압니다. 올 한 해 주교님의 사목교서에 따라 우리가 이 초대에 응답하는 기쁨을 얻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이 단순히 이제껏 생각한 지식이 아니라, 신앙고백과 성사, 윤리와 기도 안에서 온전히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목교서 8항에서도 얘기하고 있듯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크게 신앙 고백, 그리스도 신비의 기념, 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인의 기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신앙, 전례, 윤리, 기도라는 네 구성을 신학의 분야로 나누어 이해하지 않으시길 부탁하고 싶습니다. 이는 우리가 성경을 읽어왔던 방법처럼 교회의 가르침을 알기 위한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이고 방법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교 신비는 신앙의 대상이며, 이는 전례 행위로 기념되고 전해집니다.
하느님 자녀들의 행동을 비추고 지탱해 주는 것은 바로 이 신비입니다. 이 신비는 우리 기도의 토대이며, 우리의 청원과 찬양과 간구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을 연결해 봄으로써 하느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믿으며, 하느님을 만나고, 살아가며, 기도로 다시 응답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의 신비를 알고 거행하고 생활화하며 관상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리 교육의 주된 과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이 과정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는 로마교회의 옛 세례고백문인 사도신경에 따라(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참조) 신앙의 진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고백하는 것은 주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진리가 진리들의 서열에 있어 가장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진리들의 서열이라는 말이 신앙이 본질적인 몇 가지로 줄여질 수 있고,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오히려 유기적인 관계 안에서 이 앞선 진리들이 다른 진리를 이끌고 있다 고백할 수 있습니다.
신경에서 제일 먼저 고백하는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에 대한 가르침이 그렇습니다. 교리서는 이 아버지에 대한 고백에서 아버지만이 아니라 성자와 성령이 함께 하는 삼위일체의 신앙을 이야기합니다. 또한 창조주에 대한 고백에서 우리는 세상과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하여도 배울 수 있습니다. 세상과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시작하지 않고 이해할 경우 겪는 혼란을 우리는 이 시대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 존재를 하느님과의 관계 밖에 둘 때 우리는 죄와 타락에 대한 교리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부에 대한 창조 신앙은 인간학의 뼈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죄에 대한 교리는 결국 이어질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고백하는 모든 신앙 고백이 얼마나 완전하게 이어져 하나의 진리를 담고 있는지를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신앙 고백은 이어서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을 얘기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핵심이며,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천 년 전에 유다 지방에 있었던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이를 우리의 그리스도, 구원자라 믿는 종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하여도 얘기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베드로는, 그리고 지금 우리는 왜 예수님을 우리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까? 그 이유를 우리는 성경, 특히 복음서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신경은 이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해서 강생과 파스카의 신비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강생과 파스카의 신비 안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바라볼 때 그리스도의 의미가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신비입니다. 우리는 그 신비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을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제자들과 같이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게 된다는 것, 이는 교회의, 교리교육의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 다음으로 신경은 ‘성령을 믿으며’라고 고백합니다. 교리서에서는 성령에 대한 가르침에 이어 교회에 대한 교리를 설명합니다. 이는 우리의 교회가 성령을 통하여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교리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령의 성전으로 봅니다. 또한 교회가 지닌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지는 특성을 이야기함으로써 우리 교회의 특성을 설명합니다. 이어서 그리스도 신자들을 살피고 성인들의 통공을 얘기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인 모든 교회가 성령 안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다시 살펴봅니다. 그리고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 영원한 삶을 믿는다 고백합니다. 이는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질 우리 교회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이렇게 교리 교육은 먼저 신앙 교육을 통하여 믿어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는 이 안에서 완성될 수 없음을 우리는 압니다. 예를 들어 죄의 용서를 세례성사와 고해성사를 만나지 않고 깨달을 수 없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알기 위해 성체성사가 우리에게 필요함에서 그렇습니다. 앞서 얘기하였듯이,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은 전례와 윤리, 기도 안에서 온전히 자리 잡고 드러날 것입니다.
이 유기적인 네 과정의 시작을 우리는 신앙을 고백함으로 이뤄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으며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는 믿음이 우리를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이에 동의한다, 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교리서의 시작 부분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시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인간은 하느님을 본질적으로 갈망하며 하느님을 앎으로써 자신을 완성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교리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며, 교리를 배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 많은 신자들이 교리라는 말에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그러나 교리는 우리가 신앙을 원하는 한 우리에게 필요한 과정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시기에 우리 모두는 초대되고 있음을 압니다. 올 한 해 주교님의 사목교서에 따라 우리가 이 초대에 응답하는 기쁨을 얻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이 단순히 이제껏 생각한 지식이 아니라, 신앙고백과 성사, 윤리와 기도 안에서 온전히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