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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호 주교(5)[가톨릭신문 202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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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10-14 조회 1,94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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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4. 이병호 주교(5)

“성경을 배우기 전에 먼저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경을 다 읽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에
대신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 이룬 통독
성경 전체가 주는 강한 인상 체험하고
교수 시절에도 성경통독의 중요성 강조

발행일2022-10-16 [제3314호, 15면]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시절 강의 중인 이병호 주교.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성경과의 인연을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대신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며칠 앞두고 있던 때였습니다. 당시에 가장 엄한 학칙 가운데 하나는, 점심과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는 학생들이 모두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저녁 식사 후에는 학년이나 학급과 상관없이 식당에서 나오는 순서대로 열두어 명이 한 떼를 이루어 운동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러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종이 울리면 로사리오 기도를 함께 바치고 성당에 들어가서 마지막 기도를 하는 것으로 하루의 공식 일정을 마쳤습니다. 어느 날 저녁때에도 그렇게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산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상상 속에서 사제가 되어 있는 저에게 6~7세쯤 되는 소년 하나가 나타나 묻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은 물론 성경을 다 읽어보셨겠지요?”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에서였지만 저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다는 못 읽어보았지만…”하면서 어린이 앞에서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은 물론 읽었지만, 구약성경은 당시 우리를 가르치시던 선종완 신부님과 개신교 측에서 주로 문익환 목사님이 주동이 되어 공동번역이 진행 중이었고, 모세오경과 이사야서를 비롯한 몇몇 대예언서들이 낱권으로 출판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읽었지만, 전체는 읽어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또 그때는 개신교에서 나온 성경이나 다른 책을 읽으면 곧바로 지옥에 가는 줄 알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쪽에서 나온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상대가 어른이라면 이런 사정을 설명해서 이해를 받을 수 있겠지만, 어린이 앞에서는 전혀 말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사제인 내가 성경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어린이에게 들켜버린 이상, 당장 사제복을 벗어버리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 다음 날 바로 동대문으로 달려갔습니다. 거기에는 헌책방이 수천 미터나 늘어서 있었고, 거기서 영어성경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가서는 가톨릭 쪽인지 개신교 쪽인지를 식별하기 위해서 맨 뒷장부터 펼쳐보았습니다. ‘imprimatur’라는 라틴어는 가톨릭교회의 출판 허락을 받았다는 표현이기 때문에, 그 단어가 분명히 적혀있는 것만 확인하고는 영어 성경 한 권을 샀습니다. 그런데 전에도 방학 동안에 읽겠다며 책을 한 보따리 가지고 집으로 갔지만 겨우 한두 권 읽는 정도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자신을 단단히 묶어둘 규칙을 정했습니다. 대략 계산을 해보니 하루에 35~40쪽을 읽어야 그 방학에 다 읽겠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에 첫째, 매일 40쪽을 읽는다. 둘째,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식으로 재미가 하나도 없는 대목이 나오면 슬슬 건너뛸 것이 분명하므로 반드시 소리 내어 읽는다. 셋째, 영어이므로 어떤 단어의 뜻을 모를 때는 물론이고 발음만 확실치 않아도 반드시 사전을 찾아서 확인한다.

그러고는 며칠 후 방학이 되어 집으로 갔습니다. 그땐 서울에서 강경까지는 기차로 7시간이 걸렸고, 차 안은 마치 피난민을 실은 것처럼 늘 콩나물시루였습니다. 그 시절 방학 때 기차 안에서 의자에 앉을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요. 7시간을 꼿꼿이 서거나 옆 의자에 기대어 서 있다가 내릴 때가 되면 발이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어찌어찌해서 겨우 내린 다음 약 3㎞ 거리에 있는 나바위 집에 도착하면 보통 새벽 2~3시였습니다. 한밤중에 갑자기 들이닥치면 마치 남북 이산가족이 만난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지요. 그렇게 가족들과 반가운 인사를 하고 나서, 방 한 켠에 앉아 스스로 약속했던 그날 치 성경을 다 읽었습니다. 첫날이라고 해서 이러저런 핑계를 대며 내일로 미루면, 내일에는 또 다른 핑계가 생길 것이 뻔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해서 그해 겨울방학에 성경을 다 읽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성경통독이라는 것을 한 것이지요.

그렇게 하고 나니, 성경에서 이 말씀 저 말씀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전체가 주는 인상이 몽둥이처럼 저를 강하게 때리는 듯했습니다. 집안의 역사로 보자면 5대 선조로부터, 그러니까 우리나라 교회역사 초창기부터 그리스도 신앙인이었고, 제가 자라난 나바위라는 동네 또한 한두 집을 제외하면 전체 주민이 신자들이었기 때문에 저는 자타가 공인하는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한 줄로 통독하고 나니“수천 년 동안 거대한 강을 이루어 도도하게 흘러서 나에게까지 도달한 그 물 속에 내가 비로소 푸욱 담갔구나!”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신앙인이었다는 생각이 큰 착각이었으며, 저는 신앙의 거대한 강물을 언덕에서 멀찍이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절실히 느낀 것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배우기 전에, 먼저 그것을 한 줄로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그때의 체험 때문에, 저는 후에 광주가톨릭대 교수로 가서도 신입생들에게 성경이나 신학을 가르치기에 앞서 성경을 읽게 하자고 주장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져서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정리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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