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주교(8)[가톨릭신문 202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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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11-04 조회 2,358회본문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4. 이병호 주교(8)
“제대로 된 교육과 복음 선포로 주님을 찬미합시다”
올바르고 정확한 성경 봉독 위해
교구 본당 전례위원 교육에 중점
살아있는 말로 복음 선포하고
하느님 말씀 참맛을 체험해야
마음 깊이 주님 영접할 수 있어
발행일2022-11-06 [제3317호, 15면]
공동체가 하느님 말씀 속으로 들어가 새 빛과 새 힘을 받고, 성체성사를 통해서 그것을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성가를 부르며 그 기쁨을 나누면, 모두가 한 주간을 생기 있게 살아갈 활력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멀찍이 서서 구경하듯 겨우 참석만 하고 돌아오면, 기름진 음식을 앞에 두고도 스쳐보기만 한 것처럼, 그것은 그림의 떡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지난 호에서 제가 교구장 재임 시절 가장 마음을 기울인 일은 모든 교우들이 하느님 말씀의 참맛을 체험하고, 그렇게 해서 마음속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하느님과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목표를 위해서 저는 교구 내 모든 본당의 전례위원들 교육에서 한 몫을 담당했습니다. 먼저, 전례에서 성경을 읽는 일부터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 일을 하다 보니까, 우리나라 어문(語文) 교육에 문제가 크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말이 어문 교육이지, 실제로는 어(語), 곧 살아있는 말에 관한 교육은 빠지고, 문(文), 곧 종이에 써놓은 깡마른 글만을 가르치고, 그것 하나로 시험도 치고 했던 것이지요. 그러니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도 살아있는 말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천만다행히도 제가 대신학생 시절에는 국어 교수님이 특별한 분이셔서 우리에게 놀랍도록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서창제 교수님이셨는데, 원래 개신교 목사님이셨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신 분으로서 서울대학교를 포함해 여러 대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시고 한글학회 이사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분은 과거에 목사님이셨기 때문에, 사목자가 될 우리의 필요에 맞추어 가르쳐주셨습니다. 강의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부터 웅변조였고, 속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음성이 이미 우리를 감동시켰습니다. 그리고 발음을 어떻게 하고 훈련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당시 우리에게 음악을 가르쳐주셨던 조영호 선생님이 또 아주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대학 졸업 후 군에 가셨다가 제대 후에 서울대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시는 분이었습니다. 이 두 분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이 지금까지도 저에게 생생히 살아 있어서 아침 산보 중에 성경을 외우며 생각에 잠기다가 거기 어울리는 노래가 생각나면 그걸 부르곤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말씀이 온 몸에 퍼지고, 옛날에 동양과 서양에서 음악이 왜 인간의 정신 양성에 유일한 과목이었는지가 절실히 느껴집니다.
주교는 견진은 물론 사목방문을 위해서도 본당에 갈 기회가 많은데, 그 때에는 교구청의 여러 국장 신부님들이 본당 사목회원들과 함께 서류 등을 통해서 점검하시는 동안, 저는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본당에서 전례가 어떤 분위기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신자들이 성경 봉독을 참으로 잘 하시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이 복음을 외워서 전하니까, 제가 주례하는 미사에서 성경 봉독을 하시는 교우들도 성경을 외워서 선포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외우기까지 여러 번 읽는 동안, 그 의미가 마음속 깊이에 전달되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강약완급을 조절할 수 있게 되어, 듣는 이들에게 그 내용이 그대로 전달되지요. 그리고 제가 강론하기 전에 신자들 가운데 한두 분을 초대해서 신앙체험담을 하시게 했습니다. 삶에 따른 비와 바람, 더위와 추위를 맨몸으로 마주하는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증언하는 동료 신자들의 체험담에서 신앙인들은 저의 강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줄이자면, 신앙인들이 하느님 말씀 속에 들어가 우리와 똑같은 몸 안으로 들어오신 하느님을 만나게 하자는 것이 저의 주교직 전체의 꿈이자 목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일에 관한 저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결코 끝날 수 없는 이야기의 아쉬움을 느끼며, 여러분께 앞으로도 계속해서 비할 바 없이 더 깊고 넓고 끝장을 볼 때까지 길을 인도해 줄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연학 수사 신부님이 쓰신 「성경은 읽는 이와 함께 자란다」입니다. ‘성서와 함께’에서 나온 이 책을 읽으며 저는 혼자서 나름대로 이리저리 모색했던 것들, 말을 하면서도 좀 더 확실한 바탕이 있었으면 하는 것들이 분명히 풀리고 확실해짐을 체험하면서, 우리말로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신부님은 젊은 시절에 이미 대단히 멀리 그리고 높게 내다보는 안목을 가지고 수도자의 길을 택하셨고, 말씀 자체이신 분 속에 들어가 사심으로써, 내용뿐 아니라 표현에 있어서도 쉬우면서도 혼솔이 없는 글로 우리의 참된 길벗이 되어주십니다. 그 길을 잘 따라가면, 우리 모두가 주님의 마지막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온 몸과 마음 그리고 뼛속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다’.”(그리스어 성경 원문, 이병호 주교 번역)
정리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