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눈] 주님, 저희의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 안봉환 신부[가톨릭신문 202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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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6-15 조회 3,207회본문
[신앙인의 눈] 주님, 저희의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 안봉환 신부
발행일2023-06-18 [제3348호, 23면]
2023년 5월, 마침내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벗어났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3년 4개월 동안 전 세계인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코로나19 방역체제를 해제한다고 공식 선언했고 우리 정부도 6월부터 그 조치에 따른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는 코로나19 감염병 대유행 이후 국민들에게 강제로 적용됐던 대부분의 방역 조치와 의무가 사라지고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눈은 뜨고 있으나 영적으로 눈먼 이처럼 살아온 이들이 있는가 하면 육적으로 눈먼 이처럼 살면서 영적으로 눈을 부릅뜨고 살아온 이들도 적지 않다. ‘세상의 빛’(요한 9,5)이신 예수님에 대한 굳센 믿음으로 영·육으로 치유 받은 이들이 신약 성경에도 줄곧 등장한다. “예수님께서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마르 10,46-52 참조)
태어나면서 장애를 앓거나, 살다가 자신이나 타인의 잘못 또는 다른 외부 영향으로 장애를 앓게 된 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가족과 이웃의 헌신적인 희생과 봉사, 나아가 모든 이의 복지를 바라는 국가의 절대적이고 무한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들을 위해 “주님, 저희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마태 20,33)
육군 이등병 시절 수류탄 폭발사고로 시력을 잃은 1급 국가유공자 송○○ 프란치스코씨와 몸이 아프고 불편해도 늘 남편 옆에서 눈과 귀, 지팡이가 되어준 인생의 동반자 이○○ 루시아씨!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사하라·고비·아타카마·남극 등 ‘세계 4대 극한 마라톤’을 완주하여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철인인 그는 삶의 문턱을 넘어 장애를 극복하고 죽음의 골짜기를 헤매며 새로 얻은 삶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단다. 그래서인지 아침에 일어나면 지팡이를 짚고 문밖에 나가 늘 머무는 자리에서 성모상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호경을 긋는단다.
매달 두 번씩 환우 봉성체를 나갈 때마다 그 부부는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신다는 기쁨에 젖어 있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있지만 늘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온 형제와 티내지 않고 묵묵히 항상 그 자리에서 남편을 위해 희생하고 섬기는 자매는 정녕 성가정의 본보기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미국의 장애인 헬렌 켈러의 「3일만 볼 수 있다면」이란 책이 생각난다. 그녀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죽기 전에 꼭 ‘3일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형제도 자신의 시집 「삼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 중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들을 유쾌하게 풀어놓으며 이렇게 적고 있다. “첫날은 제일 먼저 사랑하는 아내 얼굴을 보고 싶다. 33년 전 앞 못 보는 남편을 만나 속이 다 새까맣게 타들어가도 묵묵히 가정을 지켜준 천사의 얼굴을 꼭 한 번 보고 싶다. … 삼 일째 되는 날은 … 읽고 싶었던 책 실컷 읽고 세상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에 실컷 울겠다.”
‘눈먼 이에게 눈이 되고 다리 저는 이에게 다리가 되어’(욥 29,15) 준 자매와 장애를 극복한 형제는 오늘도 어려운 아이들,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희망의 꿈을 심어주려는 마음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요즘처럼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세상에서 우리는 장애인들에게 눈이 되고 다리가 되어 주는 신앙인으로 성실하게 살고 있는가?
코로나19 상황에서 눈은 뜨고 있으나 영적으로 눈먼 이처럼 살아온 이들이 있는가 하면 육적으로 눈먼 이처럼 살면서 영적으로 눈을 부릅뜨고 살아온 이들도 적지 않다. ‘세상의 빛’(요한 9,5)이신 예수님에 대한 굳센 믿음으로 영·육으로 치유 받은 이들이 신약 성경에도 줄곧 등장한다. “예수님께서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마르 10,46-52 참조)
태어나면서 장애를 앓거나, 살다가 자신이나 타인의 잘못 또는 다른 외부 영향으로 장애를 앓게 된 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가족과 이웃의 헌신적인 희생과 봉사, 나아가 모든 이의 복지를 바라는 국가의 절대적이고 무한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들을 위해 “주님, 저희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마태 20,33)
육군 이등병 시절 수류탄 폭발사고로 시력을 잃은 1급 국가유공자 송○○ 프란치스코씨와 몸이 아프고 불편해도 늘 남편 옆에서 눈과 귀, 지팡이가 되어준 인생의 동반자 이○○ 루시아씨!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사하라·고비·아타카마·남극 등 ‘세계 4대 극한 마라톤’을 완주하여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철인인 그는 삶의 문턱을 넘어 장애를 극복하고 죽음의 골짜기를 헤매며 새로 얻은 삶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단다. 그래서인지 아침에 일어나면 지팡이를 짚고 문밖에 나가 늘 머무는 자리에서 성모상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호경을 긋는단다.
매달 두 번씩 환우 봉성체를 나갈 때마다 그 부부는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신다는 기쁨에 젖어 있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있지만 늘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온 형제와 티내지 않고 묵묵히 항상 그 자리에서 남편을 위해 희생하고 섬기는 자매는 정녕 성가정의 본보기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미국의 장애인 헬렌 켈러의 「3일만 볼 수 있다면」이란 책이 생각난다. 그녀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죽기 전에 꼭 ‘3일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형제도 자신의 시집 「삼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 중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들을 유쾌하게 풀어놓으며 이렇게 적고 있다. “첫날은 제일 먼저 사랑하는 아내 얼굴을 보고 싶다. 33년 전 앞 못 보는 남편을 만나 속이 다 새까맣게 타들어가도 묵묵히 가정을 지켜준 천사의 얼굴을 꼭 한 번 보고 싶다. … 삼 일째 되는 날은 … 읽고 싶었던 책 실컷 읽고 세상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에 실컷 울겠다.”
‘눈먼 이에게 눈이 되고 다리 저는 이에게 다리가 되어’(욥 29,15) 준 자매와 장애를 극복한 형제는 오늘도 어려운 아이들,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희망의 꿈을 심어주려는 마음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요즘처럼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세상에서 우리는 장애인들에게 눈이 되고 다리가 되어 주는 신앙인으로 성실하게 살고 있는가?
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