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칼라 수녀의 한국 나눔의 삶 50주년 행사 열려[가톨릭평화신문 201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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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07-02본문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 굳셈을 배웁니다. 이겨내고, 견뎌내고, 어려움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넘어서게 해줍니다.”
1968년, 스물여섯 나이로 한국에 와서 한센인들과 함께한 지 올해로 51년이 된 작은 자매 관상 선교회 강칼라(Tallone Lidia) 수녀.
가난한 이들, 노숙자 등과 함께한 삶
카를라(Carla)라는 수도명 발음이 힘들어 ‘칼라’라고 불렸고, 동네 어르신이 성을 지어줘 강칼라 수녀로 살아온 그는 선교사로서 서울 봉천5동 달동네와 영등포에서 가난한 이들, 노숙자들, 공부방 아이들을 돌봤지만, 대부분은 고창의 한센인 마을인 호암마을 동혜원공소에서 살았다. 이를 기념해 1년 늦게 ‘강칼라 수녀의 한국 나눔의 삶 50주년’을 축하하는 행사가 8일 공소 뒤편 야외에서 마련됐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요. 축하 행사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사랑으로 해주시니까,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한국 나이로 올해 77세, 희수(喜壽)인 강 수녀는 “저뿐만 아니라 한평생 올곧고 바르게 살아온 우리 동혜원공소 형제자매들이 축하받아야 하는데 저만 받아 미안하다”고 거듭 겸양의 인사를 전했다.
강 수녀는 50여 년 한센인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도와주셨고, 공동체 식구들과 호암마을 가족들에게서 받은 사랑 때문”이라고 말했다.
1975년에는 한센병 환우들을 돌보고자 스페인으로 건너가 간호 공부를 하고 돌아오기도 한 칼라 수녀는 몸이 불편해서, 편견 때문에 병원에도 가지 못하는 그들을 간호하고 돌보며 평생을 살았다. 밖에 나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날마다 장에 가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선교사들을 위해 대형 병원에서 임상 위주로 개설한 2년 과정 한센병 간호 코스였는데, 거기서 한센병에 관한 모든 걸 배웠어요. 처음부터 하느님께 바친 생명이니까, 병에 걸리더라도 하느님께 맡기고 살겠다고 생각했어요. 힘들지는 않았어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저를 오히려 그분들이 여러모로 이끌어주시고 도와주셨지요. 한때 환자만 200명에 그 가족까지 모여 살았지만, 치유된 분들은 마을을 나갔고 이젠 47가구밖에 남지 않았어요. 그나마도 1인 가구가 대부분이에요. 다들 병원에도 가시고 보건소 약도 타다 드시고 해서 이제는 어려움도 거의 없습니다.”
요즘 호암마을 도자기 빚어 판매
지금은 동료 회원인 우을리(피에라) 수녀와 함께 사는 강 수녀는 요즘 마을 주민들과 함께 공동체 사업으로 ‘호암마을 도자기’를 빚어 판매하고 있다.
강 수녀는 최근 들어 어깨도, 무릎도 온전치 않은 데다 심장도 좋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네 사람들을 위해 장을 보고 도자기를 만들고 밭일도 하는 수녀는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오히려 새로운 힘을 얻고 살게 된다”며 “하느님 때문에 살았던 인생이니 하느님한테 모든 걸 맡기고 그날그날 살고 있다”고 기뻐했다.
모든 것이 기쁨, 행복이고 은총
강 수녀는 또 “한센 환우들과는 하도 가까이에 살다 보니 그냥 가족 같다”면서 “그동안 우리 가족들 사랑받지 못했던 것, 수고하고 고생했던 것, 다 하느님께서 갚아주시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은총을 주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동안 한센 가족들과 평생 함께 걸어올 수 있었다는 것은 제게도 기쁨이었고 은총이었고 행복이었다”고 덧붙였다.
강 수녀는 1943년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주 쿠네오 태생으로, 1962년에 입회해 1965년 첫 서원, 1973년 종신서원을 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