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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시는 하느님, 보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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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ecil 작성일13-03-26 00:00 조회2,8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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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타나시는 하느님, 보는 인간
                         - 2013년 부활을 맞이하여 -

1.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이 “나타나셨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서 우리는 “나타나심” 곧 “공현” 축일을 지냅니다. 우리가 지금은 공현축일에 갓 태어나신 예수님을 동방박사들이 예방하러 온 일만을 기념합니다. 그러나 옛날 교회 역사 초기에는 예수 성탄, 동방박사 방문, 세례,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술로 변화시켜 주신 일을 모두 공현축일에 기념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이 각각의 기회에는 예외 없이 그분을 알아보는 “표지”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에는 천사가 목동들에게 그 표지에 관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한 갓난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분을 알아보는 표이다”(루가 2,12). 알아보는 표지 치고는 너무나 뜻밖입니다. 그것은 마치 “산동네 골목길 쓰러져가는 움막에 갓 태어난 아기가 기저귀에 싸여 울고 있는 것을 볼 터인데 그것이 그분을 알아보는 표다” 하는 말과도 같습니다. 세계 전체로 확대하면, 그런 아기는 하루에도 수 천 수 만 명이 될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자기들을 인도한 표지에 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동방박사들에게는 “별”이 메시아를 알아볼 수 있는 표지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의 인류 전체라고 할 수 있는 비유다인들이 창조주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길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운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세례 때>에는 어떤 표지가 있었습니까?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 무렵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요르단강으로 요한을 찾아 와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에게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 때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마르 1, 9-11).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신 성령, 그리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소리가 표지였습니다. 아주 분명하고 확실한 표지인것 같지만, 그 때의 비들기는 카메라로 찍히는 것이 아니었고, 들려온 소리도 녹음기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만 보이고 들리는 것이었지요.

마지막으로 물을 술로 변화시키신 예수님의 <첫 기적 때>는 또 어땠습니까? “물을 떠간 그 하인들은 그 술을 어디에서 났는지 알고 있었지만 잔치 맡은 이는 아무것도 몰랐다”(요한 2,9)고 요한복음사가는 증언합니다. 혼인잔치에 참석한 손님이 백 명이었다면 마리아와 물을 떠간 하인 두세 명 이외에는 그 술의 출처에 관해서 아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곧 대부분의 손님들에게는 그 술이 표지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2.   복음서에서 “기적”이라고 하는 말은 본래 “표지”라는 뜻입니다. 표지는 그것을 읽거나 해석할 자격 혹 특별한 눈이 있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 자격은 “믿음”이고 신앙의 눈입니다. 기적이 마술과 다른 가장 큰 차이는 마술이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자세와 아무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데 비해, 기적은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루어 질 수가 없고, 혹 이루어진다 해도 그런 사람은 그것을 기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믿지 않는 고향 사람들 앞에 서셨을 때, 예수님의 입장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관해서 마태오복음사가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 곳에서는 별로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다”(마태 13,58).

기적 곧 표지는 믿음이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시기 전에 늘 믿음을 확인하십니다. 예를 들어, 소경 두 사람을 고쳐주실 때의 장면을 마태오는 이렇게 소개합니다. “예수께서 ‘내가 너희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다고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 믿습니다, 주님’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가 믿는 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마태 9,28-29)

기적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예수님 스스로 그것 말고는 따로 보여줄 것이 없다는 말씀과 함께 보여주신 기적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이었습니다. “그 때에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 몇이 예수께 ‘선생님, 우리에게 기적을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하고 말하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이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지만 예언자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 줄 것이 없다. 요나가 큰 바다 괴물의 뱃속에서 삼 주야를 지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땅 속에서 삼 주야를 보낼 것이다’”(마태 12,38-39).

예수님께서 죽음을 뚫고 부활하셨을 때, 그 사실을 보여주는 표지는 빈 무덤과 그분의 시신을 싸맸던 수의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믿는 요한에게는 그것이면 충분했습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요한 20,8). 그런가 하면,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표지가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시체를 훔쳐갔다”(마태 28,13)는 증거일 뿐이었습니다.

3.   믿음, 신앙. 우리는 지금 그것을 더 해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특별한 해를 살고 있습니다. 올해에 세계 어디에서나 신앙인들이 가장 많이 묵상하는 성서대목 가운데 하나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악령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의 대화 장면입니다.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렸을 때부터입니다. 악령의 발작으로 그 아이는 불 속에 뛰어 들기도 하고 물 속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 하실 수 있다면 자비를 베푸셔서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이 말에 예수께서 할 수만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일이 없다’ 하시자 아이 아버지는 큰 소리로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마르 9,21-22).
 
"믿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일이 없다." 기적은 주님과 믿는 사람이 함께 이루어내는 일입니다. 사람 쪽의 믿음이 참으로 크면, 주님 쪽에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라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의 실력을 처음으로 입증해 보이신 가나의 기적 이야기를 봅시다. 초대받아 간 잔치집에 술이 떨어졌다는 어머니의 귀띰에 예수님의 즉각적인 대꾸는 여러 면으로 놀랄만한 것이었습니다. "여인이여, 그것이 저나 당신께 무슨 상관입니까? 저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 4). 그러나 이 장면이 지닌 깊은 의미를 생각하면
이 말씀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4.   하와라는 여인이 하느님을 믿지 못한 데서 출발한 인류의 타락 이야기를 우리는 창세기 3장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뱀으로 상징되는 악령에 속아 하느님을 의심하면서 하와는 하느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당부하신 열매를 따먹고, 그것을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한 것이 인류 타락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 파멸과 죽음의 역사를 되돌려 구원과 생명의 역사로 바꾸어놓기 위해서 오신 분이 제2의 아담이신 예수님이시며,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그분을 도울 사명을 띤 분이 두 번째 하와인 마리아입니다. 그리고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벌어지는 이 장면은 이 두 분이 마침내 그 각기의 사명을 정식으로 시작하시는 자리입니다.

여기에서도 먼저 손을 쓰는 쪽은 여인입니다. 술이 떨어진 것을 먼저 눈치 채신 것도, 예수께 그 사정을 알린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메시아로서의 실력을 보일 때가 아직 되지도 않았다는 예수에게서 기적의 힘이 솟아나게 할 만큼 강력한 믿음을 보이신 것도 모두 마리아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은 당신 안에 그런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아직 의식하지 못하고 계실 때, 오히려 마리아 쪽에서 그것을 의심 없이 믿으며 한 발 앞서 보이시는 신앙행위 때문에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던 능력이 솟아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제자들도 비로로 예수를 믿게 되었고, 제2의 아담과 제2의 하와가 합동으로 이루어내는 재창조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정말 믿으면, 기적은 항상 일어납니다. 참으로 믿는 사람에게는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일어나는 일이 모두 하느님의 손가락과 숨결, 그분의 안배와 사랑을 보여주는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성서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말씀과 빵을 나누는 행위로 표현되는 형제애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성서 해설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빵을 나눌 때 눈이 열려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고 만났다는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서 계속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성체성사 곧 미사는 성서 말씀의 묵상에 이어 빵을 떼는 일로 이루어져 있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가장 확실하고 보편적인 길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제대로 하면 초대교회 신도들의 체험은 바로 우리가 지금 여기서 겪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사도들은 계속해서 놀라운 일과 기적을 많이 나타내 보이자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 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 갔다"(사도 2,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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