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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교구장 사목교서 - 믿음은 들음에서 옵니다.(로마 10,17)

본문

2019년도 교구장 사목교서

믿음은 들음에서 옵니다.”(로마 10,17)

-교구설정 100주년을 향한 새로운 복음화-
 

 1.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로마 1,7) 지난 해 저는 교구장 직무를 시작하면서 ‘교구설정 100주년을 향한 새로운 복음화’를 교구의 중장기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이 우리 자신의 내적 쇄신이었기 때문에, 저는 지난해를 ‘신앙 쇄신의 해’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쇄신을 위해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사항으로 초대교회의 모범에 따라 다섯 가지 곧 ‘성경 읽기, 교회의 가르침 배우기, 성찬례 참여, 기도, 사랑의 실천’을 제안했습니다. 이런 제안을 실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신부님, 수도자, 교우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 그런데 신앙 쇄신은 한 해나 단기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인내와 더불어 끊임없이 계속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저는 지난 해 제안했던 다섯 가지를 앞으로 한 해에 한 가지씩 집중적으로 강조하려고 합니다. 사실 ‘성경, 교회의 가르침, 성찬례, 기도, 사랑의 실천’은 내적 쇄신과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핵심요소입니다. 앞으로 5년 동안 순차적으로 이 다섯 가지 요소에 초점을 맞추어 신앙의 기초를 충실하게 다진다면, 현세에 동화되지 않고 신앙의 정신을 새롭게 하여 우리 자신의 모습이 크게 변화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로마 12,2 참조). 2019년에는 첫 번째 요소인 성경 말씀에 역점을 두고 신앙생활을 합시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

 3.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넘치는 사랑으로 마치 친구 대하시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과 사귀”(계시헌장 2항)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을 창조하신 다음 처음부터 원조(元祖)들에게 당신 자신을 알려주시고, 타락 후에도 계속 인류를 돌보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시고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셔서”, 그 백성에게 “당신을 참되고 살아 계신 한 분 하느님으로 계시하셨습니다.”(계시헌장 14항) 그리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가지 방식으로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구약 전체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전달하시는 역사입니다.


 4. 그런데 하느님께서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2) 사람이 되신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시며, 하느님께서 맡기신 구원의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강생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서 충만함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의 계시가 완성된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유일한 ‘말씀’이십니다. 성부께서는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말씀하셨고, 그 말씀 외에 다른 말씀은 없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65항)


 5. 이런 구약과 신약의 역사는 성령의 감도로 기록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곧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성경의 모든 말씀으로 오로지 한 ‘말씀’을 하시는”(가톨릭교회교리서 102항) 관계로, 성경은 그리스도의 책, 아니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언제나 성경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여 왔습니다.”(계시헌장 21항) 성경은 단순히 과거의 말씀이 아니라 살아있는 오늘의 말씀입니다. 곧 “기록되고 소리 없는 말이 아닌, 강생하시고 살아 계신 말씀”(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입니다.​

 하느님께 응답하는 우리

 6. 이렇게 하느님께서 성경 안에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궁극적으로는 당신의 ‘유일한 말씀’을 하신다면, 우리는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유일한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럴 경우 우리는 비로소 계시의 궁극 목적인 하느님을 깨달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말씀에 자신을 열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갈망을 정화하고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진정한 갈망을 소유, 쾌락, 권력 등으로 채우려 하고 있습니까? 그것들은 그 갈망을 결코 채워 줄 수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우리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힙니다.


 7. 말씀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응답이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이란 자신이 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자유로이 복종하는 것, 계시 진리를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전적으로 하느님께 내맡기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 그래서 교회는 성경을 “영성 생활의 순수하고도 영구적인 원천”(계시헌장 21항)으로 강조하였고, 실제로 성경의 말씀으로 늘 “구원의 양식과 거룩한 힘”(계시헌장 24항)을 얻어왔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이 어떤 사제에게 권고한 다음 말씀은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성경을 매우 자주 읽으십시오. 아니, 거룩한 책이 당신의 손을 떠나지 않게 하십시오. 여기에서 당신이 가르쳐야 할 것을 배우십시오.”(『서간집』, 52,7)


 8. 이와 정반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왜냐하면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 부르시는 하느님께 인간이 자신을 닫고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죄가 본질적으로 불순종이고 ‘듣지 않음’”(주님의 말씀 26항)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듣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께 순종할 수 없고 오히려 그분을 거스르고 업신여기게 됩니다. 이런 태도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순명과 정반대됩니다. 구원을 이룩하신 예수님의 철저한 순명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죄를 남김없이 드러내는 것입니다.


 9. 동정 마리아께서는 믿음의 복종을 가장 완전하게 실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그분은 일생동안 하느님의 말씀에 열려 있는, 듣는 분이셨습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말을 “곰곰이 생각”(루카 1,29)하셨고, 예수님에 관한 놀라운 일을 겪었을 때에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셨습니다.”(루카 2,19.51 참조) 그리고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는 말씀을 믿으시고, 주님의 뜻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하신 분이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그리하여 하느님의 말씀은 성모님에게 삶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올바른 성경 접근 방법

 10. 이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차례입니다.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기 위해 특히 두 가지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 하나는 성경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은 ‘죽은 문자’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성경이 성령의 감도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기 전에 반드시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시기 바랍니다.

나머지 하나는, 성경을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계시헌장 12항)에 비추어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보다도 교회라는 ‘우리’에 맡겨진 하느님의 말씀이며, 따라서 “성경의 살아 있는 주체는 하느님의 백성이고 교회”(베네딕토 16세 교황)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와의 친교 안에서만 인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진리의 핵심 속으로 파고들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벗어난 개인주의적 성경 해석은 쉽게 오류에 떨어집니다. 실제로 우리는 최근에 자의적인 성경 해석으로 신자들을 현혹하여 큰 물의를 빚고 있는 사례들을 자주 접합니다. 따라서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성경을 반드시 교회라는 ‘우리’ 안에서 함께 읽어야 합니다. 특히 사목 현장에 계신 신부님들께서는 교우들이 교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독서

 11. 이 자리에서 저는, 기도하며 교회의 친교 안에서 성경을 읽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거룩한 독서는 유다교가 수천 년 동안,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이천 년 동안 실천해 온 전통적 독서입니다. 이 독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가까이 만나고 하느님을 더욱 깊게 만나게 도와주는데, - 교황 권고 『주님의 말씀』 87항에 따라 언급한다면 – 다음 네 단계로 진행됩니다.

먼저 거룩한 독서는 본문을 읽는 것(lectio)으로 시작됩니다. 이 단계는 ‘성경 본문이 그 자체로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 단계입니다.

둘째 단계는 묵상(meditatio)인데, ‘성경 본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라고 물으면서 주님께서 성경 본문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개인적인 메시지와 공동체적인 메시지를 파악하는 단계입니다.

셋째 단계는 기도(oratio)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메시지에 응답하며 그분께 우리의 말씀을 드리는 순간입니다. 곧 우리는 청원, 전구, 감사, 찬미 등으로 응답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관상(contemplatio)입니다. 관상은 만물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판단하는 지혜를 추구하며,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1코린 2,16)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이런 거룩한 독서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 말씀의 보고(寶庫)에 깊이 들어가, 살아 있는 하느님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가까이 만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실천사항 제안

 12. 이제 올 한 해부터 시작하여 앞으로 계속 성경 말씀으로 우리의 신앙을 쇄신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사항으로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전례 거행이 없을 때에도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책이 성당 안에서 눈에 보이게 공경을 받을 수 있도록 성경을 모셔 둡시다.

둘째, 개인적인 차원에서 매일 성경 읽기를 생활화합시다. 매일 당일 미사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읽고 마음에 새기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그리고 교구가 제작한 성경 읽기표를 이용하여 성경을 통독하거나 성경 노트를 이용하여 성경을 필사합시다. 하루에 4장씩 읽거나 필사하면 1년 안에 마칠 수 있습니다.

셋째, 본당 차원에서 11항에서 소개한 ‘거룩한 독서’를 시행합시다. 여기에는 우리 교구 신부님들(정태현 신부님, 김정훈 신부님)이 저술하신 책 『거룩한 독서』가 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이 거룩한 독서를 응용한 우리 교구 성경 프로그램 ‘말씀의 벗’을 시행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씀의 벗’은 중학생부터 어르신까지 거의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하는 ‘읽기와 거룩한 독서’를 겸한 성경 프로그램으로서 5년 주기로 성경 전체를 통독하고 말씀을 나눌 수 있습니다. 혹은 교구 성서사도직의 ‘성서 40주간’이나 ‘성서 100주간’을 이용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맛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근래에 청년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청년성서’가 본당에서 활성화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본당 차원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성경 공부를 지속적으로 시행합시다. 점점 고령화되는 사회 현실에 직면하여 노인사목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여러 수도회에서 펴낸 책자를 활용하거나 본당 자체적으로 계획하여 어르신들을 위한 성경 공부나 성경 나눔을 이행하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지구 차원에서 성경 연수나 특강을 시행합시다. 몇 차례 나누어 1년에 4시간 내지 8시간 정도 실시한다면, 성경의 특정 부분을 심화할 수 있고, 각 본당에서 운영하는 성경 프로그램의 내용을 종합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 지구 차원이나 교구 차원에서 ‘성서주간’에 성경 축제를 마련합시다. 이때 성경을 필사한 노트, 성경을 주제로 한 성경화, 성경서예 등을 전시하고, 성경 공부에 도움이 되는 도서를 전시합시다. 그리고 영적 서적의 저자나 성경 강사를 초청하여 ‘말씀 토크’(북토크)를 진행하고, 성경 소그룹이 준비한 ‘성경 콩트’ 또는 ‘성경 연극’ 등을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성경 축제의 장을 펼쳐봅시다.

일곱째, 교구 차원에서 말씀 피정을 마련합시다. 1박 2일 혹은 2박 3일 피정을 통해 성경 말씀의 뜻을 깊이 깨닫고 묵상을 통해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합시다.

마지막으로 전주가톨릭신학원이 전주와 군산에서 운영하는 성서연수과에 등록하여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배웁시다. 필요하다면 다른 지역에도 2년 코스로 성서연수과를 개설 운영할 수 있습니다.​ 

 

 결론 : 능동적 경청은 새로운 창조와 복음화의 원천

 13.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성경은 성전과 함께 “신앙의 최고 규범”(계시헌장 21항)입니다. 성경은 “매일 하느님께서 믿는 이들에게 말씀하시는”(예로니모) 도구입니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앞으로 계속 성모님처럼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마음에 간직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세상의 “속임수나 간교한 계략에서 나온 가르침의 온갖 풍랑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밀려다니지”(에페 4,17)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반석 위에 자기 삶을 세운 것과 같아 세상의 거센 바람에도 굳건하게 견딜 것입니다(마태 7,24 이하). 그리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인 기쁨을 충만하게 누릴 것입니다. 원래 말씀으로 창조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능동적으로 경청함으로써 이렇게 더욱 새롭게 창조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불필요하다거나 낯설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 기쁨을 나누어 교회와 세상을 새롭게 복음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8년 12월 2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전주교구장 주교 김선태(사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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