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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2023년 노동절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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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4-17 16:43 조회3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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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2023년 노동절 담화

노동과 휴식을 통하여 하느님을 닮아 가야 하는 인간

(「노동하는 인간」, 25항 참조)

1890년 5월 1일. 전 세계 노동자가 하루 8시간 노동을 주장하며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들은 하루 12-16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이 건강을 크게 해칠 뿐 아니라 결국 고용 불안과 임금 하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자각하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지금의 하루 8시간 노동은 노동자들의 오랜 노력의 결실입니다. 이에 관하여 교회는 1891년에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반포하며 비인간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과중한 노동을 비판하는 동시에 적절한 노동 시간과 휴식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끊임없이 옹호하여 왔습니다.

노동 시간 단축과 그 정당성은 ‘휴식’에 관한 성경 가르침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종과 이방인 심지어 가축도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이 휴식을 취할 권리가 있다.’(신명 5,14 참조)고 말씀하십니다. 노동하는 인간에게 휴식은 하느님의 선물이자 누구나 동등하게 누려야 하는 권리입니다. 그들에게 휴식은 노동으로 소모된 체력과 더불어 무디어진 정신의 보호와 회복이라는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 사랑이라는 공동체적 차원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곧 노동자에게는 자신과 가족 공동체 그리고 사회 공동체의 일치와 완성을 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어머니요 스승」, 250항 참조).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교회는 “가정, 문화, 사회, 종교 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휴식과 여가”(사목 헌장 67항)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였습니다.
사실 인간은 노동하기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공동체의 완성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완성은 노동과 그 결과물만이 아니라 휴식과 여가 가운데 예배와 봉사, 가족과 사회 공동체와 일치함으로써 비로소 실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노동을 하면서 그리고 휴식을 하면서 하느님을 닮아 가야 합니다”(「노동하는 인간」, 25항). 휴식은 노동과 그 결과인 생산성과 이윤을 위한 대가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휴식이 먼저 보장되어야 하고, 그럴 때 그 정당성을 지닐 수 있습니다(「새로운 사태」, 31항 참조). 

그런데 우리의 노동 현실은 노동 시간의 양으로 생존하는 구조입니다. 말하자면 밤낮으로 쉼 없이 일하여야 살아갈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는 그렇게 노동을 하여도 ‘품위 있는 가정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기’(사목 헌장 67항 참조)는커녕 자신의 생존마저 위협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동자가 자신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임금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휴식과 여가는 ‘사치’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노동 시간은 노동자의 생명에도 직접 영향을 끼칩니다. 2019-2021년 산재 승인 판정서에 따르면 산업 재해로 인정된 자살자 10명 가운데 3명이 과로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세계 보건 기구(WHO)와 국제 노동 기구(ILO)는 2016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주 5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으로 74만 5천 명이 사망하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최대 노동 시간이 주 52시간으로 제한되었음에도 경제 협력 개발 기구(OCED) 회원 국가 중 가장 많은 시간 동안 일하여야 하는 우리 현실을 볼 때 이러한 통계는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최근 ‘집중-장시간 노동’의 법제화 그리고 실행 그 자체가 불투명한 ‘노사 합의에 따른 장기간 휴식’에 대한 움직임은 ‘과로 사회’ 그리고 “죽음의 문화”(「생명의 복음」, 12항)를 부채질할 뿐입니다.

한편 어떤 이는 노동 조건이 노사의 자율적 합의에 따라 정하여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동등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이러한 주장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노동 조건은 ‘사회 정의의 기준‘에 따라 정하여져야 합니다(「간추린 사회 교리」, 302-303항 참조). 특히 노동 시간 확대와 유연성의 문제는 생산성과 이윤의 극대화가 아니라, 인간 존엄성 그리고 가정과 사회 공동체의 존립과 일치라는 기준에 부합하여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노동자는 숫자가 아니라 인간”(이탈리아 건설 협회 대표단에게 한 연설, 2020.1.20.)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은 노동자에게 정당한 휴식권 보장과 함께 휴식으로 노동 시간이 단축되더라도 노동자가 살아남을 정도의 임금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임금을 보장하여야 합니다(「백주년」, 34항 참조). 그리고 노동자라면 누구나 ‘사회 보장 제도’(「간추린 사회 교리」, 301항 참조)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여야 합니다. 특히 정부는 노동자의 존엄과 권리를 침해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인 원청-하청, 대기업-영세 기업 그리고 소상공인 등의 관계 안에 존재하고 다양한 고용 형태에서 종사하는 노동자가 경험하는 불공정하고 탐욕적인 거래 구조와 다양한 방식의 중간착취 등을 강력하게 규제하여야 합니다. 동시에 영세 사업장에는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 노동은 ‘생존 노동’이 아니라 ‘세상을 일구고 돌보는 노동’(창세 2,15 참조)입니다. 장시간-저임금의 늪인 ‘생존 노동’을 권하는 세상은 사회를 ‘노예 사회’, 인간을 ‘노동의 노예’로 만듭니다. 이것을 강요하는 그 어떠한 정치‧경제‧사회‧문화 구조도 결코 정의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휴식과 노동의 조화를 통하여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웃과 사회를 돌봄으로써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 사업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 사회가 하느님의 선물이자 모든 인간의 보편적 권리인 휴식이 제한되지 않고 ‘생존 임금 노동’에 인간을 가두는 노예 사회가 되지 않도록 함께 연대하여야 합니다.

노동절을 맞이하여,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 사업에 동참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안에서 교회의 형제적 연대로 위로를 보냅니다. 또한 더 합당한 휴식과 여가를 누리며 노동자 자신과 그 가족이 더욱 행복해지기를 기도합니다. 

노동자이신 예수님, 당신의 동료인 노동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소서.

2023년 5월 1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선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