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
순교자들의 피의 꽃으로 피어난
여산
- 여산은 작은 고을이지만 왕비를 배출한 지역이어서 특별히 사법권을 지닌 부사와 영장이 있었다. 때문에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처형도 이뤄졌는데, 특히 1868년에는 많은 신자들이 처형되었다. 이곳 순교자들은 여산, 고산, 진산, 금산 등지에서 잡혀와 다양한 방식으로 처형되었다. 배다리 근처에서는 교수형으로, 여산 숲정이에서는 참수형이 주로 집행되었고, 동헌 앞마당에서는 교우들의 손을 뒤로 결박하고 얼굴에 물을 뿌린 후 그 위에 백지를 여러 겹 붙여 질식시켜 죽게하는 백지사형이 집행되었다.
- 여산옥터는 옥에 갇힌 신자들의 고통과 신앙을 묵상할 수 있는 곳이다. 여산의 순교자들은 옥에서 한마음으로 서로 격려하며 기도했던 공동체로 유명하다.
옥에 갇혀 있던 신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굶주림의 고통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통 중에 있던 신자들은 옷 속에 있는 솜을 먹기도 하고 처형지로 끌려 나오자 풀을 뜯어 먹기 바빴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이곳 순교자들 중의 대표적인 인물은 김성첨이며, 이들의 유해는 천호성지와 천호산 일대에 묻혀 있다.
찾아오시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