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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옥과 고딕 양식 조화 이룬 독특한 성당[가톨릭신문 202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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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2-18 조회 27,6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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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계신 곳, 그 곳에 가고 싶다] 전주교구 익산 나바위성당

전통 한옥과 고딕 양식 조화 이룬 독특한 성당

김대건 신부 서품 받은 뒤 고국 돌아와 첫 발 딛은 곳
100여 년 전 중국서 제작한 제대·촛대 등 고스란히 간직
‘역사관’으로 꾸민 옛 사제관, 각종 유물 1000여 점 전시

발행일2020-02-09 [제3181호, 10면]

나바위성당 전경. 전통 한옥 양식에 뾰족한 고딕 양식 종탑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금강(錦江)변을 따라 빼곡히 들어선 비닐하우스와 전형적인 농촌 마을 사이로 붉은 벽돌의 성당이 눈에 띈다. 예로부터 납작한 바위가 많이 널려있다고 해 ‘나바위’라 불린 이곳은 한국교회 역사상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닌 역사적인 장소다.


‘나바위’는 열다섯 나이에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조선 헌종 11년(1845년) 8월 17일 중국 김가항(金家港)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와 첫 발을 내딛은 곳이다.

그해 8월 31일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와 그의 서품식을 주례한 페레올 주교(제3대 조선교구장), 성 다블뤼 주교(제5대 조선교구장)와 선원을 포함한 14명은 라파엘호를 타고 중국 상하이를 출발해 인천 제물포항으로 향했다. 큰 태풍을 여러 번 만나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긴 일행은 10월 12일 밤 8시 오늘날의 강경인 황산포 인근 화산 언저리에 다다라서야 42일간의 기나긴 항해를 마칠 수 있었다.
 

나바위본당 신자들이 1955년 성 김대건 신부 나바위 상륙 110주년과 시복 30주년을 기념해 세운 ‘성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탑’.
성 김대건 신부는 이듬해 포졸들에게 잡혀 새남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지만, 첫 한국인 사제의 귀국은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이고 시퍼런 박해의 칼날에 맞서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했던 초기 신앙선조들에게 한줄기 희망과도 같았다. 그 거룩한 땅에 바로 전주교구 익산 나바위본당(주임 양승욱 신부)과 성지가 자리 잡고 있다.

나바위성당은 멀리서 보면 뾰족한 종탑이 인상적인 전형적인 붉은 벽돌의 성당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한옥’과 ‘고딕’ 양식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구조의 성당이기 때문이다.

본당 초대 주임 베르모렐 신부는 1906년 봄,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을 설계했던 프와넬 신부에게 설계를 맡기고, 중국인 목수들을 불러와 한국 전통 양식의 목조 성당을 그해 완성한다. 그로부터 3년 뒤 베르모렐 신부는 프랑스에서 크고 좋은 종을 예물로 봉헌 받아 한국으로 가지고 왔다. 하지만 목조로 지어진 종탑에 새로 가지고 온 무거운 종을 거는 것은 무리였다. 베르모렐 신부는 1916년 한옥 성당 앞부분 일부를 헐고, 고딕식 종각을 세웠다. 이때 기존 목조 벽체도 헐어 벽돌 벽으로 교체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나바위성당은 정면에서 보면 뾰족한 종탑에서 고딕양식을, 좌우로 돌아 성당을 바라보면 팔작지붕으로 한식기와를 얹은 전통 한옥의 모습을 보인다. 성당 내부에는 유교 전통에 따라 남녀 신자를 구분했던 칸막이 흔적이 기둥에 남아있다. 특히 성당 마루는 1906년 건립 때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성당은 현재 ‘나바위성지 역사관’으로 사용하는 사제관과 함께 1987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318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성당 내부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의 길.

성당 내부 세례대. 이 밖에도 100여 년 전 중국에서 제작된 여러 성물들이 고스란히 자리잡고 있다.

성당에는 제대 3개가 벽을 향해 서있다. 성당 건립 당시 중국 남경 라자로수도원에서 만들어 옮겨왔다. 오른쪽 제대에는 성 김대건 신부와 성 다블뤼 주교의 유해 일부가 안치돼 있다.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페레올 주교와 성 다블뤼 주교, 성 현석문 가롤로, 성 최형 베드로의 영정사진도 모셔져 있다. 이밖에 예수님 성상과 촛대, 세례대, 십자가의 길 14처 등 여러 성물도 100여 년 전 제대와 함께 중국에서 제작된 것들이다.

성당 뒤론 나지막한 산이 있다. 바로 ‘화산’(華山)이다. 1650년경 우암 송시열 선생이 ‘산은 작지만 매우 아름답다’하여 빛날 ‘화’(華)와 뫼 ‘산’(山)을 써 이름 지었다. 나바위성당도 화산성당, 화산천주교회로 불리다 1989년 마을이름 따 ‘나바위성당’으로 개칭했다.
 

남녀 신자를 구분했던 칸막이 흔적이 기둥에 남아있다.


성당 뒤를 돌아 화산에 들어서면 성 김대건 신부의 석상이 서있다. 성모동산이 있는 이곳은 대규모 순례객이 방문했을 때 야외미사를 드리는 곳이기도 하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산을 오르면 1955년 성 김대건 신부 나바위 상륙 110주년과 시복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나바위 본당 신자들이 건립한 ‘성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탑’이 자리한다. 당시 본당 신자들이 직접 큰 돌을 깨 목도로 옮기고 화산 정상 너럭바위 부근에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일일이 손으로 쌓아올린 기념탑에서도 신자들의 굳건한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익산시는 이 기념탑의 가치를 인정해 2018년 향토유적으로 지정 보존하고 있다.

성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탑 앞에는 ‘망금정’이라는 정자도 있다. 초대 대구대교구장 드망즈 주교가 1912년 첫 사목 방문을 다녀간 후, 매년 개인 연례 피정을 한 곳이다. 드망즈 주교가 피정을 할 때만 해도 화산 바로 밑까지 금강 강물이 넘실댔다. 드망즈 주교는 화산 정상에서 보는 금강의 모습에서 이역만리 고향을 떠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나바위본당은 매년 10월 12일 ‘성 김대건 신부와 그 일행 최초 조선입국 착지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참가자들은 라파엘호 진입로에서부터 성당까지 3.5㎞ 거리를 성인의 유해를 모시고 현양 행사를 펼친다. 특히 본당은 2015년 성 김대건 신부 나바위 도착 170주년을 기해 문화재청과 전라북도, 익산시와 함께 ‘나바위 성당 종합 정비 계획’(2016~2025)을 세워 추진 중이다. 지난해엔 성당 앞을 가리고 서있던 사무실 건물을 철거하고 성당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사제관을 ‘역사관’으로 꾸몄다. 이 역사관에는 1800년대 초기 목판본으로 발행된 예식서와 1000여 점의 전시물이 전시돼 나바위 성당의 역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역사관으로 꾸며진 옛 사제관. 성당과 함께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318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고딕 양식의 종탑을 추가하기 전 초기의 나바위성당 전경.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박원희 기자 petersc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