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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호 주교(7)[가톨릭신문 202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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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10-27 조회 2,07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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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4. 이병호 주교(7)

“신자들이 말씀속에서 어려움 이겨낼 힘 얻게 하자”


어려운 살림에도 마음 모아
교구청 건립에 앞장선 교우들
교구장으로서 마음 기울인 것
말씀과 하느님과의 친교 통해
살아있는 신앙 살도록 돕는 일

발행일2022-10-30 [제3316호, 15면] 

 

이병호 주교가 2009년 6월 꽃동네에서 열린 세계성령대회에서 성경을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이병호 주교 제공


교구장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무엇보다도 ‘그동안 얼마나 많은 분의 기도와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나!’하는 생각이 히브리서의 한 대목과 함께 크게 밀려들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히브 12,1) 어렸을 때의 본당 신부님, 수녀님들, 초등학생 때의 담임이셨던 이범욱 선생님이 특히 생각났습니다. 수업 시간에 가끔 세계명작 동화책을 읽어주셔서 폭발적으로 발달해가던 시절 저의 상상력을 한껏 부풀려주신 분입니다. 평소 저의 태도를 눈여겨보셨는지, 한번은 말씀하셨습니다. “병호야, 너는 커서 철학자가 되거라!” 철학자가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인생이란…”하는 말로 시작되는 문제를 붙들고 사는 분들이라는 정도로 알고 있었지요. 그 말씀이 마음속에 꽂혔습니다.

중학생 때는 천재라고 알려지셨지만 인간적으로는 따뜻한 구석이 좀 모자라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분이 신자가 되어 나타나셨습니다. 몸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고 계셨는데, 레지오마리애 회원들이 환자 방문 왔다가 놓고 간 「준주성범」을 읽고 받은 충격 때문에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몇 달 전에 읽고 받았던 충격을 이 선생님도 똑같이 받으셨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놀랐지요.


이제 시간 여행을 껑충 뛰어 볼까요. 사제가 되고, 첫 본당을 거쳐서, 아주 우연히 광주 신학교 교수 요원으로 선정된 다음 신학교에서 1년 반을 지낸 뒤, 파리로 유학을 갔지요. 거기에서는 파리 외방 전교회 본부 겸 신학교였던 곳에서 지냈는데, 거기 신부님들의 은혜를 참으로 크게 입었습니다. 저의 개인 생활뿐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정으로, 파리에 있는 한국 신자 공동체를 맡게 된 뒤부터는 파리 외방 전교회에서 주일 미사나 예비신자 교육 등 사목에 따른 여러 가지 활동을 위한 공간도 다 제공해 주셨습니다. 특히 6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시다가, 본부로 발탁되어 가셔서 오랫동안 총무로 계시던 쟝 미셀 퀴니 신부님(1930-2022)께서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시는 분이셨는데, 선교사로서의 정신을 온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한번은 그분이 중요한 일로 우리 한국 공동체에 오시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본댁에서 의사이셨던 그분 아버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본댁이나 우리 공동체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공동체로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여쭈어보았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선교사입니다. 아버님께서는 틀림없이 제가 당신의 장례식에 오는 것보다 여기 프랑스에서라도 선교지에서 오신 교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선교사로서의 일을 하는 것을 훨씬 더 원하실 것입니다.”


교구장 시절 이야기요? 눈에 보이는 일을 한 것이 별로 없다고 했었지요. 교구청을 지었지 않았느냐구요? 부지 마련부터 건축비까지 큰돈이 들었는데, 모두 교우들이 어려운 살림에도 감동적으로 마음을 모아서 해 주셨습니다. 한번은 새벽 미사 후에 늘 하던 대로 아침 산책길을 걷고 있었는데, 몇 발짝 앞에서 네댓 분의 여성들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그 대화를 듣게 되었지요. 그중 한 분이 개인 병원을 지어야 하는 상황에 있던 동료에게 물었습니다. “일은 잘 진척되고 있어?” 질문을 받은 자매님이 대답했습니다. “우선 교구청부터 지어놓고.” 저는 방향을 바꾸어 다른 길로 접어들었지만, 그분들의 대화는 내 가슴에 깊은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교우들을 직접 상대하시는 신부님들의 수고는 말할 것도 없지요.

제가 교구장으로서 가장 마음을 기울인 일이 있다면, 그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모든 신앙인들이 하느님의 말씀속으로 깊이 들어가, 이 세상 삶에 따른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께서 펼쳐주시는 낙원’(「주님의 말씀」 87항 참조)의 맛을 보고 거기에서 힘을 얻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신앙인들이 실제로도 그분을 세상의 부모처럼 가깝게 느끼며 그분과의 대화인 기도도 마음속 깊은 데서 우러나는 자신의 말과 표현으로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둘을 합하면, 전례 특히 주일 미사에서 성경을 읽는 일부터 신자들의 기도를 바치는 일까지, 습관적이거나 기계적인 느낌을 주는 태도에서 벗어나, 정말로 믿는 사람답게, 생생하고 활기차게 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지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전례에 참여할 때 “마치 국외자나 구경꾼처럼 그냥 끼어 서있지 않고, 거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속 깊이 이해하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건하게, 또 능동적으로”(전례헌장 48항 참조) 사제와 더불어 모두가 함께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강조한 대로지요. 실제의 신앙생활이 자칫 기계적이고 수동적이 될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엄청난 보화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땅속에 묻혀있어 자신이 무얼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르고 살 수가 있지요.

젊은이들이 성당에서 떠나고 새로 영세한 분들이 쉽게 냉담 교우가 되는 것을 보며 걱정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위 두 가지가 제대로 이루어져서, 우리 신앙생활의 중심인 미사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이 사람들에게 정말 새로운 힘을 주고 삶에 따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솟아나게 한다면, 우리의 걱정은 사라질 것입니다. 신부님들 중에는 이런 일을 아주 잘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요. 그러나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먼 것 또한 사실입니다.

정리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