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눈] 풋내기 농사꾼 안봉환 신부[가톨릭신문 202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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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7-13 조회 1,963회본문
[신앙인의 눈] 풋내기 농사꾼 / 안봉환 신부
발행일2023-07-16 [제3352호, 23면]
2년 전 고랭지배추 2000포기로 절임배추를 만들어 판매했고, 작년에는 5000포기로 김장김치를 만들어 판매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던 여성부장 엘리사벳씨. 논밭을 부치며 동네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엘리사벳씨는 지난 2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에는 7000포기로 김장김치를 만들어 팔아 성전 신축기금을 마련해 보자고 했다. 속으로는 ‘간덩이가 상당히 부었구만!’ 외치면서도 그녀의 용기와 담대함에 저절로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배추 가격은 상당히 비싸고 양념 가격은 비교적 저렴했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 상황은 다를 수 있으니 먼저 밭을 구해 고추를 많이 심어 수확하고 그곳에 배추를 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풋내기 농사꾼이 볼 때 넓은 하늘을 가린 검은 구름 사이로 태양의 얼굴이 찬란하게 빛나는 듯한 기발한 생각이었다.
옛말에 농사야말로 천하의 근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과거를 되돌아보니 필자는 어렸을 적 한여름에 어머니의 뒤를 따라 고추밭에 가서 고춧대를 뽑은 일 외에는 농사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며칠 동안 고추밭을 구하는 문제로 고민하던 중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레고리오 형제가 솔밭과 논밭을 지나 십여 분 거리에 있는 그의 밭을 선뜻 사용하게 해 주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고추밭을 경작해 온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하면서 신자들 모두 한마음 한몸이 되어 고추를 수확할 때까지 각자 역할을 도맡기로 했다.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 12,14-27)
50~60대 남성들로 이루어진 대건회는 고추를 파종할 밭을 만들기 위해 덩어리 흙을 깨서 부드럽게 하고 크고 작은 돌멩이들을 골라냈다. 고추 파종 보름 전에 밑거름을 충분히 골고루 뿌렸다. 트랙터를 소유한 동네 아저씨에게 부탁해 정해진 날에 밭 만들기를 위한 로타리 작업을 마쳤다. 습기가 없고 완전히 건조한 상태에서 관리기로 골을 타 주고 이랑은 높게 고랑은 깊게 두둑을 만들었다. 두둑에 관리기로 비닐을 씌우고 좌우에서 괭이로 비닐 가장자리를 흙으로 덮어줬다. 비닐 위에 고추를 파종할 구멍을 뚫고 흙을 충분히 물로 적셔줬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토양살균제와 토양살충제를 섞어놓은 물통에 고추 모종을 충분히 담궜다가 간격에 맞춰 파종했다. 농사는 천운(天運)이요 장사는 인운(人運)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 농사는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셔야만 좋은 결실을 얻는다. “나는 제때에 비를 내려 주겠다. 그러면 땅은 소출을 내고 들의 나무는 열매를 낼 것이다.”(레위 26,4)
태풍 소식이 들려오고 폭우가 쏟아졌다. 고추밭에 가 보니 전쟁터와 다름 없다. 비바람에 꺾여 스러졌거나 말라비틀어진 것들도 적지 않다. 다급히 신자들을 불러 모아 지지대를 심고 줄치기를 하고, 고춧대가 흔들지 않도록 끈으로 묶어줬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는 고추 순치기와 잡풀을 제거했다. ‘이런 세상에! 고추 농사가 쉬울 줄 알았더니 이렇게 어렵고 할 일도 많다니!’ 내일을 알 수 없는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처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야고 5,7)리며 ‘모든 소출의 맏물로 주님께 영광을’(잠언 3,9) 드리는 것 뿐! 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로사 할머니가 소리친다. “뽀오얀 피부가 검게 그을려가는 신부님의 얼굴을 볼 때마다 애가 타요∼잉”.
배추 가격은 상당히 비싸고 양념 가격은 비교적 저렴했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 상황은 다를 수 있으니 먼저 밭을 구해 고추를 많이 심어 수확하고 그곳에 배추를 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풋내기 농사꾼이 볼 때 넓은 하늘을 가린 검은 구름 사이로 태양의 얼굴이 찬란하게 빛나는 듯한 기발한 생각이었다.
옛말에 농사야말로 천하의 근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과거를 되돌아보니 필자는 어렸을 적 한여름에 어머니의 뒤를 따라 고추밭에 가서 고춧대를 뽑은 일 외에는 농사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며칠 동안 고추밭을 구하는 문제로 고민하던 중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레고리오 형제가 솔밭과 논밭을 지나 십여 분 거리에 있는 그의 밭을 선뜻 사용하게 해 주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고추밭을 경작해 온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하면서 신자들 모두 한마음 한몸이 되어 고추를 수확할 때까지 각자 역할을 도맡기로 했다.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 12,14-27)
50~60대 남성들로 이루어진 대건회는 고추를 파종할 밭을 만들기 위해 덩어리 흙을 깨서 부드럽게 하고 크고 작은 돌멩이들을 골라냈다. 고추 파종 보름 전에 밑거름을 충분히 골고루 뿌렸다. 트랙터를 소유한 동네 아저씨에게 부탁해 정해진 날에 밭 만들기를 위한 로타리 작업을 마쳤다. 습기가 없고 완전히 건조한 상태에서 관리기로 골을 타 주고 이랑은 높게 고랑은 깊게 두둑을 만들었다. 두둑에 관리기로 비닐을 씌우고 좌우에서 괭이로 비닐 가장자리를 흙으로 덮어줬다. 비닐 위에 고추를 파종할 구멍을 뚫고 흙을 충분히 물로 적셔줬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토양살균제와 토양살충제를 섞어놓은 물통에 고추 모종을 충분히 담궜다가 간격에 맞춰 파종했다. 농사는 천운(天運)이요 장사는 인운(人運)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 농사는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셔야만 좋은 결실을 얻는다. “나는 제때에 비를 내려 주겠다. 그러면 땅은 소출을 내고 들의 나무는 열매를 낼 것이다.”(레위 26,4)
태풍 소식이 들려오고 폭우가 쏟아졌다. 고추밭에 가 보니 전쟁터와 다름 없다. 비바람에 꺾여 스러졌거나 말라비틀어진 것들도 적지 않다. 다급히 신자들을 불러 모아 지지대를 심고 줄치기를 하고, 고춧대가 흔들지 않도록 끈으로 묶어줬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는 고추 순치기와 잡풀을 제거했다. ‘이런 세상에! 고추 농사가 쉬울 줄 알았더니 이렇게 어렵고 할 일도 많다니!’ 내일을 알 수 없는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처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야고 5,7)리며 ‘모든 소출의 맏물로 주님께 영광을’(잠언 3,9) 드리는 것 뿐! 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로사 할머니가 소리친다. “뽀오얀 피부가 검게 그을려가는 신부님의 얼굴을 볼 때마다 애가 타요∼잉”.
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