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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 기적 일군 임실치즈 지정환 신부 하늘나라로[가톨릭평화신문 2019-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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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05-08 조회 2,04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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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 기적 일군 ‘임실치즈’ 지정환 신부, 하늘나라로

전주교구 원로사목자, 벨기에 출신으로 60년간 한국서 사목 … 치즈 산업 일으켜 지역민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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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 미사의 지정환 신부 영정. 전주교구 홍보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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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교구 무지개장학재단 2018년 하반기 장학금 전달식에 참석한 지정환 신부.(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가톨릭평화신문 DB




가난하고 척박하기 그지없던 1960년대 전북 임실에 우리나라 최초로 치즈 공장을 세우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군 지정환(디디에, 전주교구 원로사목자) 신부가 13일 선종했다. 향년 88세.

벨기에 출신인 지 신부는 1958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28살의 젊은 선교사로 한국 땅을 밟았다. 1960년 전주교구 소속 사제로 전주 전동 보좌, 부안 주임을 거쳐 1964년 임실 주임으로 부임한 그는 척박한 농촌을 먹여 살릴 방법을 고민하다 전북 완주의 한 신부가 선물한 산양 2마리로 치즈 생산을 시도했다. 치즈 생산 기술을 배우기 위해 유럽의 공장을 돌며 장인들로부터 비법을 배워 3년 만인 1967년 5월 한국 최초의 치즈 공장을 세웠다. 그 이후 임실은 한국 치즈의 대명사가 되었다.

지 신부는 목표했던 치즈 생산을 이루자 주민들에게 대가 없이 모든 기술을 전수하고 권한을 물려줬다. 한 해 270억 원의 소득을 안겨다 주는 ‘임실 치즈’는 그가 농민들에게 가져다준 희망과 사랑의 선물이었다.



유신반대 시위도 참여, 정의에 헌신

지 신부는 1970년대 유신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추방될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농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인정돼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1980년 5ㆍ18 민주화운동 때는 시민들에게 나눠줄 우유를 트럭에 싣고 혼자 광주로 내려가기도 했다. 이렇게 이 땅에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했던 지 신부는 자신의 이름을 “정의가 환히 빛날 때까지”라는 의미로 지정환이라 지었다.

지 신부에게 찾아온 시련과 고통은 불치의 병이었다. 다발성 신경화증 발병으로 오른쪽 다리에 마비가 오는 등 건강이 나빠지자 1981년 벨기에로 떠난 그는 3년 뒤 휠체어를 탄 채로 귀국했다. 이후 중증장애인을 위한 재활에 헌신하기로 하고 전북 완주에 재활센터 ‘무지개의 집’을 설립했다. 2002년엔 치즈 산업을 일구고 장애인 복지에 힘쓴 공로로 호암재단 사회봉사상을 받기도 했다. 그때 받은 상금 1억 원을 기반으로 재원을 마련해 2009년에는 무지개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사각지대의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정부는 지난 2016년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그에게 한국 국적을 부여했다.



전주 치명자산 묘지에 안장

16일 전주 주교좌중앙성당에서 봉헌된 장례 미사에서 교구장 김선태 주교는 “지 신부님은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 사람으로 사시면서 어렵고 소외된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셨던 참 목자였다”며 “우리도 고인을 본받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아가자”고 말했다. 고인은 전주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됐다. 

 윤재선 기자 leoyun@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