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의 작은 교회 공소를 찾아서(38)
페이지 정보
작성일2022-07-07 조회 751회본문
장수성당(주임=방의성 신부)의 관할인 상동공소는 장수군 번암면 상동2길 21-4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공소 설립은 1954년이다. 김복순(젬마, 공소회장)자매는 아랫마을 하동공소에서 공소 예절을 같이 해오다가 상동마을 신자수가 50여 명으로 늘어 공소가 필요했다고 전한다.
현재 공소 건물은 김길선(바오로)형제가 완공, 1994년 11월 20일에 축복하여 하느님께 봉헌한 공소이다. 바오로 형제의 집은 골목길에 접해있고, 집 안쪽으로 아담한 슬레이트 건물로 성모상은 오른쪽 입구에, 지붕 위에는 예수님상이 있어 생소한 모습이다. 5월까지 코로나로 인해 장수성당에서 주일미사를 참례하다가 6월부터 공소 미사(매월 넷째 주일 오전 7시 30분)가 재개되었다.
바오로 형제는 지인의 소개로 신부님 부친을 소개 받아 교리가 부족한 상태에서도 새벽 미사에 참례, 수녀님의 배려로 세례를 받았다. 세례 후에는 하느님의 자녀가 됨에 기쁨과 감사함이 넘치는 생활로 이어졌다. 이후 친구들과 우연히 지지계곡 구경 길에 들렀다 이곳이 좋아 정착, 땅 200평 구입 후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기 위해 공소를 짓기로 했다. 1993년 12월 9일, 사업 실패로 받지 못한 미수금을 조금씩 받게 되어 공사를 시작, 전문적인 일은 인력을 구하고 공소 신자들이 작업을 돕다 자금이 없으면 공사 중단과 시작을 반복하다 완공하였다.
바오로 형제가 기록한 ‘상동공소 봉헌 장부’에는 12월 15일에 목재는 분무골산에서 이경엽(안드레아)형제가 나무를 2탕(번) 운반해주었고 94년 1월 1일~4월 10일까지 블록, 슬레이트 올리기, 천정 마무리, 용마루 올린 작업시간, 장수성당에서 십자가, 성모상, 십자가의 길 14처, 대야성당에서 제대 기증 등 공소 신자들의 도움과 타 본당 신자들의 봉헌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994년 7월 10일 완공과 동시에 첫 공소 예절을 ‘성 안드레아 김대건 사제 순교자’ 축일에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김 젬마 자매는 서울에서 기반을 잡고 생활하던 중, 늦은 나이에 구교 집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시댁이 있는 상동마을로 내려와 비닐하우스에 야채를 재배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이 방과 후에는 번암 아동센터에서 공부를 하는데 개신교 원장이 교회를 같이 운영하여, 혼자만 천주교 신자라 신앙생활에 연결점이 없어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정정순(루시아, 83세)어르신(공소회장 시모)은 수분리 구교 집안으로 시집와 63년을 사셨다. 그 시절에는 교우들끼리만 혼인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공소가 생기기 전에 판공 때가 되면, 어르신이 제대를 만들어 신부님이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하였고 점심 준비도 하였다고 한다. 막내딸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에서 봉헌 생활을 하고 있어, 수녀님을 위해 매일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이명숙(요셉피나, 61세)자매는 10여 년을 공소회장을 지냈다. 구교 집안으로 결혼하여 가정이 평화롭게 살며, 일이 끝나는 저녁시간에는 동네를 돌면서 묵주기도를 바친다고 한다.
상동공소는 배씨, 엄씨 집성촌으로 피난 온 구교우 친인척들이 이 마을에 살면서, 개인이 공소를 봉헌하여 신앙의 구심점이 되었다. 교적에는 11가구에 31명의 교우들이 있지만 대부분 연로하여 투병과 코로나로 쉬는 교우들은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코로나로 닫힌 공소의 신자들은 장수성당에서 7~8명만이 주일미사를 참례해 왔다.
공소 신자들의 뜨거운 신앙으로 세워진 공동체가 생업에 치우치다 보니 공소 유지와 신앙생활의 어려움이 자꾸 늘어간다고 김 젬마 자매는 전한다. 그래도 최근 열심한 부부가 귀농하여 활력이 되고, 다시 문을 연 공소에서 매월 한 번(매월 넷째 주일) 참례하는 공소 주일미사에 상동 공동체가 다시 함께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취재 : 서정순 세실리아(교구 기자단), 사진 : 김대평 마태오(교구 가톨릭사진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