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의 작은 교회 공소를 찾아서(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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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09-15 조회 413회본문
들녘 모내기 준비로 한창일 때 땅이 좋아 밥맛이 좋다는 부안 계화도 창북리의 들판은 녹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모내기 준비로 한창인 논길을 지나 부안성당(주임=김주형 신부)관할 창북공소를 찾았다.
조용한 시골마을, 한때는 북적였을 공소 마당에는 신자들이 농사지었다는 마늘, 양파, 각종 채소들이 가득했고 공소 입구 양쪽에는 꽃들이 환하게 피어 ‘어서 오라’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며 들어섰다. 600여 평의 넓은 뜰에 40평 정도의 벽돌집에서 2대와 현재(4대) 공소회장을 재임하고 계시는 김인기 요셉 형제를 만났다.
간척지 사업을 했던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에 위치한 창북공소. 농사를 짓던 주민들이 초대 회장님 댁에서 공소 예절을 하다가 전주교구에서 부지를 마련해 주었고 50여 명의 교우들이 힘을 모아 블록으로 집을 짓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1980년 설립, 1988년 5월에 착공하였다. 그해 부안성당 권영균 안토니오 신부님 때 50여 명의 신자들과 8월 25일에 봉헌식을 하게 된다. 2007년에 슬레이트 지붕을 철판으로 교체하고 2009년 내부수리를 깔끔하게 한 뒤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987년 정읍 산내에서 수몰민들이 이주했는데 초대 공소회장이셨던 이원양 안드레아 형제가 경찰공무원 퇴직을 하시고 농협 조합장을 하시면서 초대회장을 하셨다. 구교 집안인 이 안드레아 형제의 집안에서 두 분의 사제와 한 분의 수도자가 현재 하느님 사업을 하시고 있고 이원상 고르네리오(3대 공소회장)형제 집안에서도 수도자 한 분이 광주에 계신다. 1대 회장, 3대 회장 두 분은 사촌형제 지간이다.
두 분 회장이 창북공소를 이끌고 많은 이들의 본보기가 되었다고 이웃 신자들은 지금도 한결같은 말씀을 하신다.
그 후 1988년도 자비의 모후 쁘리시디움을 조직하여 지금까지 남녀 혼성팀으로 11명의 단원이 레지오 모임을 하고 있다. 그때에는 매년 10명 이상의 예비신자가 영세를 받기도 했다. 한때는 130명의 신자가 있었지만 도시로 떠나는 젊은이가 많다 보니 지금은 평균 나이가 거의 60-70대로 이루어지고 신자 수는 30-40명 정도이다.
창북공소에서는 공소가 비어 있을 때를 이용해 공소 회장의 배려로 마을의 저소득 가정, 한 부모 가정, 조손 가정, 다문화 가정에서 약 7~8명의 아이들을 상담하는 돌보미 장소로 이용되기도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교리교사라도 있으면 아이들을 끌어안을 수가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매월 미사 첫째 주와 둘째 주는 봉고차 이동으로 신자들의 불편을 덜어주려 부안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고 셋째 주는 돈지공소, 넷째 주는 창북공소에서 오후 5시 미사를 집전한다.
신부님이 오시는 넷째 주일에는 저녁 식사를 모두 함께 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질의응답도 해가며 즐겁게 지냈었다. 코로나로 인해 지금은 잠시 중단되었지만 아이들이 뛰어노는 성당 마당을 기대해보고 신자들이 많아져 동네잔치처럼 북적북적한 공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취재 | 한창님 마리아(교구 기자단), 사진 | 손영익 비오(교구 가톨릭사진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