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의 작은 교회 공소를 찾아서(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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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12-09 조회 513회본문
풍성함으로 익어가는 가을에 번암공소를 다녀왔다. 장수군 번암면 노단신기길 9-6번지에 위치한 번암공소는 장수성당(주임=방의성 신부)관할이다.
작은 도시의 성당같이 적벽돌로 만들어진 공소의 건물은 아담하고 견고했다. 아름드리 자란 소나무 아래에 성모상과 잘 정리된 마당의 잔디밭은, 매주 신자들이 모여 주님께 미사 봉헌하는 성당같이 보였다. 미리 연락을 받은 공소회장(장재주 사도 요한)과 어르신들이 나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번암공소는 1916년 설립되어 서병록 아우구스티노 형제가 초대 공소회장을 맡으면서 신자 20명으로 공소 예절을 시작, 1년에 2번 부활과 성탄에 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고 한다.
서석준 베드로(서석구 원로신부 큰형) 형제는 작은 할아버지이신 서병록 공소회장이 번암 양조장을 운영하며 공소를 이끌어 갔다며, 본인은 광주에서 퇴직 후 1997년 번암으로 돌아와 지금에 이르고 6·25 때 다친 다리가 불편하여 지금은 집에서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공소가 다시금 활기를 띤 것은 강덕행 신부(1986.1.22.~92.1.27)가 장수성당으로 부임한 이후부터이다. 번암 지역이 번성하여 본당으로 승격되기를 기원하며, 위치와 부지를 정했다. 장수성당 신축 중에 번암공소부터 신축을 하였고,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사리, 취나물, 오미자, 김치, 등을 판매하여 공소 신축 경비에 일조하였다.
1988년 7월에는 공소 신자 단합대회를 가졌고, 10월 22일에 400여 명의 신자들이 참여하여 공소 축성식을 가졌다. 밤샘 철야기도를 한 달에 한 번씩 2년 동안 한 적도 있다. 이때는 전국에서 많은 신자들이 참석하여 은총의 시간으로 보냈고 축복받은 시간이었다고 전한다.
최운자 안젤라 자매는 성탄 때 흰색 한복을 입고 세례를 받은 기억을 되새기며, 우울증이 심했으나 신앙생활하며 좋아졌다고 한다. 이제는 복지회관에서 컴퓨터를 배워 인터넷도 하고, 신자들과 노래 교실을 다니며 친교도 나누고 주님 은총으로 감사한 생활을 한다고 한다.
김종기 안드레아, 이영자 마리아 부부는 식당을 하면서 “신자로서 욕을 안 얻어먹는 것이 최고다.”라는 신조로 살아왔다.
장재주 사도 요한 형제는 퇴직 후 공소회장을 맡으면서 공소 건물 리모델링을 하였다. 2017년에 슬래브에서 패넬 지붕으로 교체하고 잔디밭도 정리하여 아담하고 깔끔한 공소로 가꾸고 있다.
“번암지역도 주민들이 연로하고 줄어들어 젊은층이 70세라고 한다. 선조들이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 돕고 협력하며 오손도손 살아왔지만, 지금은 시대의 변천으로 왜소해져 가는 공소의 현실이 안타깝다.”라고 밝혔다.
세대수는 29세대, 6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소 미사는 하절기에는 셋째 주일 오전 7시 30분, 동절기에는 오후 3시에 주일미사를 봉헌하며, 요즘에는 20~30여 명이 공소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취재 | 서정순 세실리아(교구 기자단), 사진 | 강성석 빅토리노(교구 가톨릭사진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