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25일 성탄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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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ecil 작성일08-12-26 00:00 조회2,35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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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외아들과 하느님의 자녀들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천사들의 이런 환호 속에 세상에 오시는 평화의 왕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가정 그리고 주변사회와 세상에 당신께서만 주실 수 있는 참된 평화와 기쁨을 충만히 내려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성탄 구유 장식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하느님의 외아드님께서는 세상에 첫 번째 오셨을 때에는 사람들이 알아보지도 못하고 따라서 맞아들이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주님을 알고 맞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오시는 그분을 우리 영혼 속 깊이 받아 모시기 위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일에 각자 나름대로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마음을 활짝 열고 그분을 우리의 삶과 정신 속 깊이 받아 모시면, 우리의 삶은 그분과 함께 하는 잔치가 될 것입니다. “들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묵시 3,20)
말씀으로 오신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씨에 비유하여 아주 간단하면서도 깊은 의미가 담긴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이렇게 시작된 말씀은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 등 떨어진 바닥에 따라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는 경우에서부터 백 배나 풍부한 결실을 맺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제자들이 군중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사야가 일찍이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이 백성이 마음의 문을 닫고 귀를 막고 눈을 감은 탓이니, 그렇지만 않다면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서서 마침내 나한테 온전하게 고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리고 나서 당신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깨닫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밝히십니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많은 예언자들과 의인들이> - 루가복음에는 <많은 예언자들과 제왕들도> - 너희가 지금 보는 것을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는 것을 들으려고 했으나 듣지 못하였다.”(마태 13장) 말씀으로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받아 모실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거기에 비하면 옛날에 살다 간 제왕이나 성현 군자들이 누린 행복도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기”(요한 1,12)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풀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처럼, 혹은 들판에 돋아난 잡초처럼 잠깐 있다가 사라질 뻔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느님의 세계로 들어갈 자격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외아드님이 사람이 되신 것도 실상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이 잠시 살다가 들풀처럼 사라져 버리는가, 아니면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느님의 세계로 들어가는가 하는 것보다 각자에게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자 이사야는 하느님께 받은 말씀을 이렇게 전합니다. “한 소리 있어 명하신다. ‘외쳐라.’ ‘무엇을 외칠까요?’ 하고 나는 물었다. ‘모든 인생은 한낱 풀 포기, 그 영화는 들에 핀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진다. 스쳐 가는 야훼의 입김에, 백성이란 실로 풀과 같은 존재이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지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이사 40, 6-8)
그러므로 우리는 삶에서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의 사람들은 주로 예언자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언자 가운데 마지막은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 그렇다면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그런데 사실은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보았다. 성서에, ‘너보다 앞서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네 갈 길을 미리 닦아 놓으리라’ 하신 말씀은 바로 이 사람을 가리킨 것이다.”
들에 지천으로 나있는 잡초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잠깐 있다가 사라지고 말 삶이라면 그것은 사람이 찾아 나설만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 왕궁에 사는 제왕의 호사로 대표되는 현세적 출세나 부귀영화도 모든 것을 걸고 추구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예언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이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모든 것을 걸고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계속됩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일찍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이미 이 땅에서 열리기 시작하는 ‘하늘 나라’에 한 발짝 들어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신앙인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요한보다도 더 큰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이여, 당신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를 깨달으십시오! 이제 당신은 하느님 본성의 수준으로 들어 높여져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지나간 삶의 어둠 속으로 되돌아가지 마십시오!”(대 레오 교황의 강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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