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부활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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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인 세실리아 작성일22-04-15 15:38 조회59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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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발걸음을 내디딥시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어둠의 온갖 세력을 물리치시고 마침내 승리하셨습니다. 이 부활의 기쁨과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게 내리기를 빕니다.
기쁨이 샘솟는 오늘, 부활의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체험한 사람들을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들은 바로 ‘몇몇 여인들’이었습니다(마르 16,1 참조). 그들은 일찍이 예수님의 말씀을 즐겨 들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줄곧 따라다니며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돌변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셨습니다. 그리고 애도할 겨를도 없이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이때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사랑하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오히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불타올랐습니다. 무엇도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로마 8,25)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보려는 일념으로, 예수님의 몸에 향료를 발라 드리려는 생각으로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때는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마르 16,2)이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대부분 태연하게 잠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끔찍한 죽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견딜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발걸음을 이른 아침부터 무덤으로 재촉한 것입니다.
무덤으로 가는 그들에게는 물론 걱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덤 입구를 막은 “매우 큰 돌”(마르 16,4)을 치우는 일입니다. 그 돌을 굴려내지 않는 한 예수님께 마지막 예를 드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장애물이 버티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또 그것을 치우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음에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장애물도 주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을 꺾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예수님께 향료를 발라 드릴 것만을 생각하며 길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무덤으로 향하는 여인들의 모습에는 사실상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하느님의 백성이 처음부터 줄곧 걸었던 삶의 여정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길을 떠났습니다(창세 12,1 참조). 하지만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히브 11,8). 자신의 여정이 어떻게 될지, 그러니까 실패할지 성공할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도 혼란스럽고 의심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길을 계속 떠난 것은 하느님을 확고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손수 길을 마련해주시리라고 믿었고, 그래서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로마 4,18) 길을 떠났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만을 의지하며 장애물에 대한 걱정을 떨쳐내고 발걸음을 계속한 여인들도 놀라운 결과에 이릅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엄청난 사건을 접합니다. 먼저, 무덤에 도착하니 큰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습니다. 장애물이 치워진 것입니다. 이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실제로 무덤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훨씬 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흰옷을 입은 젊은이가 전대미문의 소식을 전해줍니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마르 16,6).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부활 소식을 듣고 그들은 “덜덜 떨면서 겁에 질렸습니다”(마르 16,8). 하느님께서 손수 이루신 이 놀라운 일에 큰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그분을 직접 뵙기 위해 그들은 길을 계속 떠나야 했습니다. 곧 그들은 제자들에게 부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다시 일어서야 했습니다. 그래야 부활하신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마르 16,7)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그러한 여정 끝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계속되는 사랑의 발걸음으로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다음 여러 방식으로 당신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온전히 계시하시기 위해 각 사람들에게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발현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은 아닙니다. 그분을 뵙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은 여인들처럼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 낙심하지 않고 그분을 향해 길을 계속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향해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이 예수님을 향해 사랑의 발걸음을 내디딜 때 비로소 우리는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장애물이 있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좌절하거나 포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바꾸실 수 없는 상황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곧 주님께서 용서하실 수 없는 죄는 없고, 물리치실 수 없는 악은 없으며, 제거하실 수 없는 장애물도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는 것을 분명하게 믿으며,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그분을 향해 우리도 길을 떠납시다.
그런데 주님을 향해 길을 떠나는 것은 단지 개인의 내밀한 차원에만 국한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에는 사회적인 차원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하늘이나 거룩한 성전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와 함께 계시며, 특히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당신 자신을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마태 25,40)과 동일시하십니다.
그러니 “그 누구보다도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 자주 멸시당하고 무시당하는 이들, 우리에게 ‘보답할 수 없는 이들’(루카 14,14)에게 다가가야 합니다”(복음의 기쁨, 48항). 그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입시다. 관심과 연대로 그들의 상처들을 돌보아주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줍시다. 이러한 사랑의 발걸음이 진정 부활의 삶이고, 우리 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킬 것이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방법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가 내딛는 사랑의 발걸음을 지켜주시길 빕니다.
2022년 부활절
전주교구장 김선태 사도 요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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