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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혼돈에 빠졌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지혜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본보는 사회지도자와 오피니언 리더 등 각계 전문가가 현 시국을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특별기고를 연재한다.
대통령을
두고 ‘하야’ ‘탄핵’ ‘2선퇴진’을 외치는 함성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다른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당장에는, 그 분이 물러간 자리에 누가 들어설 것인가? 그리고 앞으로 계속, 모든 선출직, 나아가 많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자리에 어떤 사람이 앉을 것인가? 이것이 우리 사회에 언제까지나 잊혀져서는 안 될 과제가 될 것입니다.
정치는 ‘폴리스’라는 서양말의 뿌리가 가르쳐주는 대로, ‘많은 사람’, ‘여럿’이 함께 살 때에 생깁니다. 남자나 여자가
각기 혼자 외딴 섬에 사는 동안에는 정치가 들어설 여지가 없지만,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을 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같은 공간에 살기를 시작하면 거기 정치가 나타납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하면 한 쪽이 다른 쪽을 지배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잘 꾸려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
올바른 관계를 ‘정의’라고 합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인권과 존엄성, 그리고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할 재화의 분배
등에 있어서 똑같은 기회와 권리를 인정받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때, 정의가 서 있는 것입니다.
가정, 동, 구, 군, 시,
도, 국가 하는 식으로 테두리가 점점 커졌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금 “국가에 정의가 사라지면 그것은 강도떼가 된다”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이 얼마나 진실인지를 절실히 체험하고 있습니다. 해방 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거의 예외 없이 본인이나 가족, 혹은 가까운 사람들이
저지른 부정 때문에 불행한 마지막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 불행을 막고 본인과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요즈음, “죽어야 산다” 혹은 ‘써번트 리더쉽’, 곧 ‘정말 지도자가 되려면 소속 단체 구성원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부쩍 유행합니다. 이 역설적인 말 속에 길이 있습니다. 이런 말들의 구체적인 표현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방인들의 통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또 높은 사람들은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사이에서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입니다“(마르코 10,42-25).
이 원칙, 이 기준에서 벗어나면, 누구나 어느 순간, “이러려고
내가 그렇게 기를 써가며 이 자리에 앉으려고 했던가?”하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이 기준에 접근하여, 누구나 타고난 이기심을 쳐
이기고, 정말로 봉사하며, ‘공복’이라는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면, 그 자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인간으로서 성장시키고, 더 없이 보람 있는 삶을 실현시켜 주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극적 대하드라마가 참으로
정의롭고 밝은 사회로 뛰어오르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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